[시론-제성호] 北 대화공세와 남북관계 기사의 사진

8일 판문점에서 4개월여 만에 남북 군사 실무회담이 다시 열렸다. 금년 들어 북한이 파상적인 대화 공세를 펼친 끝에 이번에 군사 실무회담만 성사된 것이다. 이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군사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돼 있고, 이들을 그대로 두고선 남북관계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현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9일 속개된 군사 실무회담에서 양측은 본회담 개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헤어졌다. 북한이 고위급 회담에서 입장 표명을 하겠다고 할 뿐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의제 채택에 이견을 보임에 따라 다음 실무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회담이 종료된 것이다. 북측은 이번 실무회담에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과 우리 함정의 북측 해상 군사분계선 침범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차 양측간에 적잖은 신경전과 줄다리기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평화분위기 연출 경계할 때

최근 들어 부쩍 평화 공세를 취하는 북한의 속셈은 다급한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다. 김정은 후계 구도 안착에 골몰하는 북한은 ‘선군정치’를 통해 체제 결속과 정권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 호스니 무바라크의 부자세습 추진에 반기를 든 최근의 이집트 사태는 북한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3대에 걸친 권력승계의 정당화 차원에서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 행사를 성대히 거행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당장은 이달 16일 ‘사회주의 명절’의 하나인 김정일 생일을 잘 치러야 한다.

동원 가능한 내부 자원이 모자라는 게 문제다. 부족분을 외부 지원(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재개 요청 포함)으로 메우려면 평화 분위기 연출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작금 북한이 남북대화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앞으로도 북한은 대화공세를 계속 구사할 것이다. 하지만 체면을 구기지 않고도 식량, 비료 등을 얻어가기 위해 우리 측 관심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적당히 물타기 하려 할 공산이 크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 가해자 명시 없이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 노력에 합의하거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우리 측의 군사연습에 대해 자위적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발뺌하며 민간인 살상 부분에 대해서만 ‘유감’의 뜻을 표할 수도 있다. 두 사건 공히 북방한계선(NLL) 문제에서 비롯됐다면서 NLL 재협상을 포함한 서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를 우선 협의하자고 압박할 수도 있다. 이른바 ‘의제전환 전술’이 그것이다. 이 같은 행동과 자세는 모두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사이비 평화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이런 행보를 고수할 경우 2011년 남북관계의 전망은 밝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듯 필요한 것을 얻어간 뒤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행태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잘 못 대응할 경우 원칙 훼손과 ‘도발-협상-보상’ 패턴의 악순환 재현 위험이 있다.

‘꽃놀이패’의 이면 간파해야

북한 지도부는 이번에 대화 공세의 노림수가 통하지 않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남한 내 종북세력에게 대북정책 전환과 대북지원 여론을 조성할 계기를 주어 ‘남남갈등’을 유도하는 한편 ‘전쟁과 평화’를 화두로 우리 사회를 분열시켜 내년 총선-대선에 개입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에 대해선 남북대화 재개 노력의 무위(無爲)를 들어 북·미 고위급 회담 조기 개최를 요구할 것이다.

결국 작금 북한의 대화 제의는 국면 전환, 위기 돌파를 위한 일종의 ‘꽃놀이패’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남 전략과 협상 전술을 간파하고 주도면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솔직한 시인·사과만이 ‘바른 남북관계’를 정립할 수 있음을 북한 측에 설명하고 태도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제성호(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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