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성근] 감리교 평신도로 산다는 것 기사의 사진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울부짖던 교단 지도자들이 이래도 되는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사를 주셨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자유의사로만 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사람에겐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선택할 자유가 없듯 교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자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 한 가지가 유아세례의 경우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님 품에 안겨 세례를 받은 것이 그 사람의 일생에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와 같은 종교생활의 선택은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 기독교인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지 인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70년 전 어머님의 품에 안겨 북악산 줄기 끝에 있는 오래된 감리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 후 성장해 감리교 교단이 설립한 대학에서 10여년간 총장 직무를 감당해 온 것은 그때그때 자유의사에 의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내면적 관련을 볼 때 보이지 않는 어떤 주재자의 힘에 의하여서 이끌려온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80년대 민주화 물결이 학원가에도 밀려들어 각 대학의 학생처장들이 큰 시련을 겪던 시절 늘 밝은 표정으로 유머감각을 발휘하던 학생처장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일찌감치 총장실을 방문하여 느닷없이 능청을 떨었다. “총장님! 우리 평신도들은 공부가 부족하여 목사님들이 일러주는 대로 죽음 후에 가는 곳이 생전의 행위에 따라 천당과 지옥으로 갈린다고 하는 말씀을 찰떡처럼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신 감독님들과 훌륭한 목사님들은 깊은 연구 끝에 이미 저세상에 천당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양입니다.”

나는 늘 유머러스한 그가 하는 말이라 그냥 농담 섞인 아침인사 정도로 받아들이려 했다. “여보! 아침부터 농담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시오? 기독교 대학의 간부 교수가 그런 농담을 해서야 되겠소.” 그러면서 차를 권하였다. 그러나 자리에 앉은 학생처장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되묻는 것이었다. “총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박식하고 경건한 교회 지도자들이 어쩌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평소 우리에게는 ‘행실이 잘못되면 죽어서 지옥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라고 겁을 주지만, 자기들은 지옥이라는 게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못된 짓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큰 눈을 껌벅이면서 말하던 장면이 최근 나에게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해학적 요소까지 지닌 뼈아픈 지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 평신도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기에는 감리교 교단의 지도층 속에서는 세속화 경향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기류는 교회의 급속한 성장, 조직의 비대화와 맞물려 조직의 동맥경화증이 심해졌고, 지도부와 평신도 집단의 소통이 결여되면서 지도부의 안하무인격인 상호쟁투와 반목, 그리고 교권 쟁탈이 격렬하게 전개돼 왔다.

한때는 감독회장 자리를 놓고 형제 간 치열한 선거전을 겪었는데, 그 당시 선거전에 동원된 자금만도 수십억원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최근에 와서는 두 명의 감독회장이 나타나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자신들이 감독회장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교회의 신성한 자존적 권한은 팽개쳐졌고, 세속의 권력인 사법부가 지정한 어느 변호사가 감리교 교단의 전반적 지휘권을 위임받게 되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변호사는 감리교의 교인도 아닌 장로교의 장로라고 한다. 감리교 교단이 큰 망신을 당한 것이다.

눈을 뜨면 “너희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밝은 불빛이 돼라”고 설교하고, 입을 열면 “너희는 세상을 부정과 부패에서 구원하는 짠 소금이 돼라”고 울부짖던 교단의 지도자들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옛날 그 학생처장이 호소하듯 하던 목소리가 다시 귓전을 울린다.

이성근 서울벤처정보 대학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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