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길고도 큰 싸움 될까 걱정이다 기사의 사진

희나리라는 게 있다. 덜 마른 장작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이 잘 붙지 않을 건 당연지사다. 일부 지방에서는 덜 익은 채로 말라비틀어진 고추도 역시 희나리라고 부르는데, 사전엔 이게 틀린 말이고 이런 고추는 희아리라고 해야 맞는다고 돼 있다.

한나라당 내 비주류인 박근혜계가 당면 정국의 최대 이슈인 개헌 논의를 희나리로 만들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주류인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기 위해 아무리 풀무질을 해도 아예 불이 붙지 않거나 붙더라도 이내 꺼지게 장작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태도다. 그걸 위해 개헌 논의 자체를 철저히 외면하는 무시, 즉 치지도외(置之度外)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개헌 논의 자체가 아직은 국민들로부터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무시한 채 놓아두면 추진하는 쪽이 “제풀에 지쳐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복지 등 생활 입법 활동에 부쩍 잰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이의 일환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주 의총을 열어 당 내에 개헌특별기구를 두기로 결정했으나,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계가 이 기구에 참여할 것 같진 않다.

풀무질 전략 vs 희나리 전략

이처럼 당내에서조차 찬반의견이 나뉘고, 민주당도 논의 자체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등 개헌에 대한 분위기가 냉담한 가운데에도 주류의 개헌 의지는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다. 개헌 전도사를 자임한 이재오 장관은 지난 주 “개헌을 위해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상대는 골리앗이다”고 결의를 다시 피력했다. 지금은 개헌 추진 세력이 약세이나 제풀에 지쳐 떨어질 것이라는 박근혜계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은 거대한 반대 세력을 꺾고 개헌을 해낼 것이라는 각오인 것이다.

이 장관은 우선 무시전략으로 임하고 있는 박근혜계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자극하기로 전략을 세운 것 같다. 다윗과 골리앗의 비유도 그렇거니와, 특히 “선거 2년 전부터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운운한 것은 대선 가도에서 일찌감치 대세를 잡은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게 틀림없다. 주류 일각에선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초반 대세를 장악했다가 김대중, 노무현에게 연거푸 패한 이회창의 예를 들면서 앞으로 2년이면 판이 몇 번 뒤집어질지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또 은밀한 자리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자기 당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진 못할망정 떨어뜨릴 힘은 있다거나, 대선 후보로서의 박 전 대표 “약점”을 들추기도 한다.

희나리 전략이 우세하지만

그들은 박 전 대표가 과거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사실을 상기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여야가 18대 국회에서 개헌하기로 합의했던 사실을 들어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에서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다시 보여줄 때”라고 압박할지도 모른다. 주류는 내색은 않고 있으나 내년 4월 19대 총선의 공천권이 자기들에게 있음을 무기로 여길 수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러한 주류의 전략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시전략으로 맞서는 한편, 지금의 압도적 대세를 유지하기 위해 당내정치보다는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대세만 장악하고 있으면 주류도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셈법일 터이다.

개헌 논의가 활활 타오르게 하겠다는 이명박계의 풀무질 전략이 성공할지, 불이 붙지 못하게 하겠다는 박근혜계의 희나리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초반 판세는 희나리 전략이 우세해 보이나, 그래도 반대편은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는 주류다. 그래서 싸움이 당초 예상보다 오래 가고 커질 것 같은 느낌이다.

정치판에서의 권력 투쟁이야 자연스런 일이고, 또 그것이 정치 발전에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강하다. 다만 집권 세력이 둘로 나뉘어 대립 갈등에 함몰되고, 그래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대응에 의존할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속된 말로 잠깐만 졸아도 죽을지 모르는 게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여서 하는 말이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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