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8) 꽃노래는 아직 멀구나 기사의 사진

1월은 ‘맹춘(孟春)’이고 2월은 ‘화견월(花見月)’이랬다. 해 바뀌자마자 봄바람과 꽃노래라니, 호시절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토록 성급하다. 그래서일까, 송나라 장거는 수선스런 봄 타령을 슬그머니 타박하는 시를 지었다. ‘강가의 풀은 무슨 일로 푸르며/ 산에 피는 꽃은 누굴 위해 붉은가/ 조물주는 오로지 입을 다무는데/ 해마다 요란하기는 봄바람이라네’

봄이 거볍게 오겠는가. 봄꽃은 겨울을 견딘 자에게 베푸는 은전이다. 꽃 지고 잎 시드는 삼동의 추위 속에서 귀하기는 상록이다.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를 보며 혹독한 세월을 참는다. 옛 화가가 세한도를 그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꽃이 시답잖아서가 아니라 경망스런 대춘부를 경계해서다.

조선 후기에 삼정승을 고루 지낸 이재 권돈인은 추사 김정희와 절친한 사이다. 두 사람 다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는 마른 붓질을 좋아했고, 이재는 짙은 먹을 즐겼다. 이재는 이 그림 옆에 ‘세한삼우를 그려 시적 정취를 채웠다’고 썼다. ‘삼우(三友)’는 곧 소나무, 대나무, 매화다. 모진 세월을 꿋꿋이 넘기는 세 벗이다. 그럼에도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에 수북한 대나무와 우뚝한 바위만 보일 뿐, 매화는 찾아봐도 안 보인다.

매화는 어디에 숨겼을까. 뒷날 이 그림을 본 추사는 “그림의 뜻이 이와 같으니 형태의 닮음을 넘어섰구나”라며 거들었다. 모양이 아니라 뜻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여도 매화를 뺀 이유는 여전히 궁금하다. 견뎌야 할 날이 길다. 매화는 봄을 서둘러 알린다. 덩달아 시부적대는 꽃놀이 패거리가 못마땅해서 그랬을까.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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