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미국, 앞으로 어떡할래?” 기사의 사진

워싱턴에서 세기적인 이집트 드라마를 바라보면서 생각나는 두 가지. 2009년 6월 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와 관련해 획기적인 발언을 했다. 이집트를 방문한 그는 카이로 대학에서 중동의 민주주의 구현을 역설하며 “미국은 평화로운 선거로 구성된 정부를 지지하며 표현의 자유, 정직한 정부, 선택의 자유 등 민주적 가치를 옹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스마트 외교’의 시작이었다. 이슬람과의 화해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중동의 철권통치 국가들에 민주화 이행을 촉구한 것이다. 전임 조지 W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에서 탈피를 선언한 그 연설은 신선하고 자극적이었다. 미국 내 보수파와 공화당, 친이스라엘계로부터는 격렬한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

거기까지였다. 말은 민주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행동은 없었다.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반대 세력을 억압했고, 표현의 자유를 빼앗았으며, 선거부정도 저질렀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한 해 경제원조 15억 달러는 여전히 유지됐고, 이슬람 국가 중 미국의 제1 맹방(盟邦)의 지위도 잃지 않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미국에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가 됐다. 무바라크는 2009년, 2010년 연이어 미국을 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카이로 연설 20여 개월 뒤 미국이 손을 놓음으로써 무바라크는 30년 권좌에서 쫓겨났다.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가치와 민주적 가치는 미국 외교의 이중성이다. 그 이중성이 무바라크를 한껏 올려놨다 내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이번 사태 진행에서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다. 전 세계 주요 외교 현안은 그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주요 현안에 미국이 관여되지 않는 게 없고, 클린턴의 언급이 없을 리 없다. 신문 앞면에서 ‘클린턴 장관이 ∼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지 못하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집트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한 지난주 초부터 그는 언론에서 사라졌다. 무바라크가 하야했을 때도 공개 발언이 없었다. 다만 이틀 뒤 국무부 브리핑에서 그가 관련국 파트너들과 이집트 사태를 논의하고 있다는 발표만 있었다.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클린턴은 사태 초기 “이집트 정부는 안정적”(1월 25일)이라고 평가했고, “술레이만 주도의 점진적 개혁 이행 지지가 중요하다”(2월 5일)고 언급했었다.

이후 그의 입장은 오바마나 백악관에서 나온 반응과는 달랐다. 지금 미국의 기류와도 다르다. 미 언론들은 백악관과 국무부의 의견 차이로 이집트 정책에서 혼선을 빚었다고 분석했다. 그건 표피적인 것이다. 전략적 이해와 민주적 가치, 이 상반된 현실과 명분을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미국 외교의 이중성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클린턴은 ‘전략적 이해’라는 현실을 생각했고, 오바마는 ‘민주적 가치’라는 명분을 우선했다.

세계가 지켜본 이집트 사태는 미국에 세 가지를 묻고 있다. 우선 미국 외교의 이중성.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최고 가치로 삼는 미국은 때때로 국가 이익 확보를 위해 이 가치와는 전혀 다른 정권들을 지원해 왔다. 그런 이중성을 이집트 사태는 그대로 드러냈다. 두 번째, 이집트 사태는 미국이 제시하는 국제 질서의 기준을 묻고 있다. 냉전시대에 미국은 자유 이념의 확산자였다. 9·11테러 이후엔 대(對)테러리즘의 선봉자이다. ‘나를 따르라’는 일방적 지도력이 통했다. 아직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 외교가 국제질서의 기준으로 통하는 시대는 이집트 사태를 기점으로 과거가 돼버린 듯한 인상이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사태는 공유, 개방, 트위터, 위키리크스 등으로 특징되는 세대에도 미국 외교가 통할 것 같냐고 묻고 있다. 그런 세대가 중추적 역할을 할 땐 어떤 단일 노선도, 어떤 단일 국가도 지구촌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이집트 사태는 묻고 있다. “미국, 너 앞으로 어떡할래?”

워싱턴=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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