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열] 위험사회와 그 적들 기사의 사진

“보통 사람의 사소한 실수가 거대 시스템과 결합하면 가공할 파국 만들어내”

재난의 유형이 바뀌고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사회를 괴롭힌 주된 재난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묵인된 변칙과 탈법에 기인한 ‘비정상 사고’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조화된 불확실성과 복잡성으로 인한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필두로 500여명의 사망자를 낳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나 101명이 사망한 같은 해 대구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 등은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 기준을 고의로 무시하고, 그 불법을 눈감아주도록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한 명백한 범죄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확실한 위험’이 부쩍 늘었다. 3개월 만에 전국으로 번져 33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를 매몰하게 만든 구제역이나, 54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게 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이 대표적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벽히 차단한 축산과학원에서 이미 예방접종을 마친 우량종자 개체들까지 감염된 것으로 미루어 그 발생 원인과 전파경로는 여전히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아울러 매몰처분이 옳은지, 아니면 예방접종이 정답인지를 두고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고, 나라마다 대처방법과 성과에서 의견이 갈린다는 점에서 구제역이나 AI는 ‘불확실한 위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이 긴박하게 많은 동물을 생매장하다 보니 4000여곳의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침출수가 심각한 2차 피해를 만들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른다. 하루아침에 자식 같은 동물들을 묻고 돌아서 눈물짓는 축산농민들의 모습도 가슴 아프지만, 가축의 매몰과 방역작업 중에 과로로 순직하거나 몸이 상해 몸져누운 공무원들도 보기에 애처롭다.

그런데 앞으로 더 걱정되는 것은 사소한 인간적 오류와 복잡한 시스템이 결합하여 파국적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의 가능성이다. 만일 지난 2월 11일 전국 고속철도망을 마비시킨 광명역 KTX 탈선사고의 원인이 철도공사의 발표대로 선로전환기의 7㎜짜리 너트 하나 때문이었다면, 이는 작은 고무링의 부식으로 인해 새어나온 연료가 점화되어 발사 73초 만에 공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나, 운전원의 순간적인 자동정지 기능 차단 실패로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견될 만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나 판단오류가 복잡한 시스템과 결합할 때 만들어낼 파국의 전조(前兆)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위험사회의 적은 삼풍의 이준 회장이나 한보의 정태수 회장처럼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속도집착증 환자와 이들과 눈이 맞은 부패한 관료였다. 그러나 불확실성이나 복잡성에 기인한 사고가 늘어난 21세기 위험사회의 적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구제역이나 AI 파동은 누구의 책임인가. 외국여행을 신고하지 않은 농민들 탓인가, 방역당국 탓인가, 정치지도자의 탓인가, 아니면 철새 탓인가. 뇌손상 장애인의 방화로 2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고의 책임공방이 결국 흐지부지되었듯이, 21세기형 재난의 본질은 법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분명치 않은 복합적 사고라는 특징을 갖는다.

원자력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20년 갈등이나 광우병 쇠고기 논란에서 드러났듯 우리 사회에서 위험을 둘러싼 정치화는 넘쳐나지만 정작 차분한 사회적 해결 노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다가오는 불확실성에 대한 건강한 두려움과 창의적인 해결책 마련, 그리고 인간적 한계에 대한 겸허한 수용태도다.

결국 곰곰이 따지고 보면 다가온 위험사회의 적은 우리 안에 숨어 있다.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과 우월성,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만을 내세우는 전문가적 독선이나, 자신이 가진 우려의 진정성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운동가적 아집, 그리고 소통과 합의 대신 희생양을 찾아 나선 ‘비난의 정치’가 그것이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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