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박근혜도 소통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그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만난 적이 없어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엔 공·사석에서 더러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 의견을 내면 그는 곧잘 단문식의 반론을 제기하곤 했다. 어느 격의 없는 자리에서 기자가 “그 사람은 많이 생각한 끝에 어렵게 의견을 냈을 터인데 서울시장이자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즉석에서 반박해 버리면 무서워서 누가 의견을 내겠느냐”고 물었다. “CEO를 오래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기획안이 올라오면 문제점과 반대 의견을 제기해본다. 그래야 안을 만든 사람이 제대로 검토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미소 속에 숨겨진 카리스마

여자 대통령의 탄생을 그린 드라마 ‘대물’을 보느냐고 누가 물었다. “본다”고 그가 대답했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웃기만 했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짓는 게 그의 전부였다. 누군가 “고스톱은 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기자가 고스톱도 못 치면서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과 후보 경선할 때 “패 돌린 뒤 룰 바꾸자고 한다”는 비판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고스톱 못 치는 사람도 패니 피바가지니 정도의 말은 다 안다”고 그가 대답했다. 모두 웃었다.

가까이서 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가냘픈 손목, 문자 그대로 섬섬옥수하며 잔잔히 웃을 뿐 말을 아끼는 게 갈데없는 한국적 요조숙녀였다. 그 여리디 여려 보이기만 하는 그의 어느 구석에 그 드센 정치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숨어 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대선 때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충청권에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약속하신 것이니 재검토하겠다면 그 책임도 대통령이 지시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그의 언급은 자연스럽게 세종시 문제에서도 그랬듯 이 대통령이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군말이 길어졌으나, 기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과학벨트 입지 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박 전 대표의 언급이 있은 뒤 한나라당 내 영남권 출신 의원들과 박근혜계 의원들이 보인 태도와 그에 관련한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의 모습을 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상대가 편히 말하게 하라

영남 의원들은 그동안 대통령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과학벨트의 영남 유치를 추진해 왔다. 그러다가 박 전 대표의 언급이 있자 일제히 입을 닫고 있다.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 심한 것은 “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 발언의 진의에 대해 해석들이 엇갈리는데, 그걸 물어볼 수도 없다”는 박근혜계 어느 의원의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의 소통 기제(機制)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글머리에서 말한 그의 대화 기법이 권위적으로 비쳐 다른 사람의 입을 막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일 지금 박근혜계 의원들조차 보스에게 궁금한 것도 못 물어볼 정도라면, 그가 혹 대통령이 됐을 때의 분위기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박 전 대표의 카리스마가 현직 대통령에 버금가는 정치 세력과 영향력의 원천일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반대파에서는 그가 집권하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그에 대비하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사실이고, 또 그것이 지속된다면 반대파의 결속을 가져와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상태에서 그가 대권 장악에 성공한다면 국민 및 야당과는 물론이고 여권 내의 소통에도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지금은 권위적,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성공하기 힘든 시대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정치 지도자로서 국정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보다 더 솔직하고 활발하게 개진하고 여러 사람도 그 앞에서 주저 없이 말할 분위기를 조성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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