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담배소송 항소심 패소 원고측 대리인 배금자 변호사 기사의 사진

“흡연 피해자 수천명 모아 전국 법원에 제소할 것”

“금연운동협의회가 이사회를 열어 담배소송을 국민소송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뜻있는 젊은 변호사 100명을 모집하고 흡연 피해자 수천명을 모아 전국 거의 모든 법원에 담배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아마 KT&G가 정신이 없을 겁니다.”

지난 15일 담배소송 항소심에서 KT&G에 패소한 원고 측 대리인 배금자(50) 변호사를 2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찾아가 만났다. 배 변호사는 반갑게 메밀차를 권했지만 담배소송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는 금세 격앙됐고 12년 소송에서 겪은 고통을 얘기할 때는 서러움에 눈가가 촉촉이 젖기도 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할 건가.

“항소심 재판부가 KT&G의 불법성을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만큼 증거를 보강하면 되기 때문에 상고할 가치는 없다. 대법원은 새로운 증거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전국적인 소송을 진행하겠다. 금연운동협의회에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소송 지휘본부를 차리겠다. 나는 담배소송 1세대 변호사로서 큰 판을 벌이고 뒤에서 젊은 후배 변호사에게 노하우를 전수할 것이다. 사고방식이 진보적인 젊은 변호사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KT&G는 공익재단을 설립하라는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할 것이다.”

-담배소송을 낸 흡연 피해자들은 패소한 뒤 뭐라고 했나.

“유일한 생존자인 방효정씨와 돌아가신 이기홍씨 가족이 ‘너무 애썼는데 좋은 결과가 안 나왔다’고 오히려 위로해줬다. 소송을 낸 여섯 분 중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너무 슬펐다. 12년을 기다리면서 많이 지쳤다.”

-향후 담배소송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1심에서 담배의 첨가물 목록 연구 문건을 KT&G의 영업비밀로 인정해 대부분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고법에서도 유지됐다. 하지만 추가로 낼 별건 소송에서는 다시 공개하라고 요청하겠다. 첨가물로 인해 중독성이 강한 발암물질이 생긴다. 국민의 건강과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공개할 경우 공익이 크기 때문에 비교형량의 법칙에 따라 영업비밀로 인정할 수 없다. 이것만 공개되면 담배회사의 불법행위 입증이 가능하다.”

-담배회사의 불법성 입증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담배소송 2라운드가 다음 달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30년 동안 담배를 피우다 폐암으로 사망한 경찰 공무원 유족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보상금을 청구했는데 1심과 항소심 모두 판결문에서 폐암의 주된 원인이 과로가 아닌 흡연이라고 인정해 청구가 기각됐다. 2005년 KT&G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냈다.”

-미국에서도 처음 40년 동안은 흡연자 누구도 승소하지 못했다.

“1954년 시작해 98년부터 이기기 시작해 지금까지 100건 정도 승소했다. 주정부도 많이 이겼다. 우리나라도 경기도가 담뱃불 화재 소송을 냈다. 담배에 연소촉진제를 넣어 담뱃불이 잘 꺼지지 않고 화재 위험도 커졌다. 김문수 지사가 나한테 소송을 맡겼다. 관심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또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몇 년 전부터 담배소송에 관심을 갖고 있다.”

-KT&G가 담배소송에서 패소하면 어떤 피해를 보는가.

“우리나라에는 미국처럼 징벌적 배상이 없다. 당장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이번도 흡연자 한 명당 5000만원을 청구했다. 다만 나중에 줄소송이 들어오면 방어를 해야 하므로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 1년에 1만6000명이 폐암으로 죽는데 90%가 흡연자다. 미국의 필립모리스는 그렇게 많이 물어주는데도 끄떡없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KT&G가 망할까봐 걱정하지만 난센스다.”

-KT&G를 상대로 12년째 소송을 하는데 힘들지 않은가.

“담배소송처럼 힘든 싸움은 없었다. 12년째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가며 무료로 변론하고 있다. 담배소송은 내용이 너무 방대해 들어가는 시간이 보통 사건의 50∼100배에 달한다. KT&G 측에는 변호사가 수십명이 붙어 있다. 박사급 연구원도 수십명이 지원하고 있다. 인적·물적 자원에서 게임이 안 된다. 다윗과 골리앗 부대의 싸움이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소송을 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20명까지 되던 변호사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한 변호사는 재판을 하루 앞두고 소속 법인이 KT&G와 고문 계약을 하면서 변호인단에서 물러났다. 집과 사무실 인터넷도 수시로 끊겼다. 메일이 해킹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사무실 직원들도 두 달을 못 버티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만뒀다. 4년 전에는 사기를 당해 2억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중소 로펌에서 대표 변호사로 오라고 해 직원을 정리하고 사무실도 내놓았다. 60대 할아버지 3명이 찾아와 2주 뒤 사무실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로펌 이직은 물거품이 됐고 할아버지들은 꼭 사무실을 쓰겠다고 해 새로 사무실을 계약했다. 하지만 잔금을 받기로 한 날 할아버지들이 안 나타났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을 것 같다.

“예전 고객이었던 의사가 2년 전 밥을 사겠다고 해 나갔는데 담배소송 얘기를 물어보더라. 소송이 가장 힘들던 때였는데 ‘원고가 소송에서 이길 것 같으면 담배회사가 배 변호사를 가만 놔두겠느냐?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일 것이다. 소송을 취하한다고 하면 배 변호사에게 돈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가 막혀 ‘담배회사 사주를 받아 협박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나중에 녹음하려고 다시 전화를 했더니 전혀 연락이 안 됐다. 몇 달 지나 출근길에 양재대로를 달리다 앞에 달리던 봉고차가 이유 없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뒤를 받았다. 그 뒤로는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가족들은 그만두라고 하지 않나.

“남편과 아들은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라.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고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응원했다. 끝까지 추스르고 할 것이다. 어려울 때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나 넬슨 만델라 대통령, 정약용 등 역사상 위인이 얼마나 박해를 많이 받았나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다.”

-이렇게 힘든 담배소송을 왜 시작했나.

“98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석사과정을 밟을 당시 46개 주정부와 7개 담배회사의 협상이 계속 헤드라인 뉴스를 탔다. 주정부들이 배상을 받아내면서 법률가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지도교수였던 존 핸슨 교수를 찾아가 미국 담배소송 이론을 한국에 적용한 논문을 쓰겠다고 말하자 ‘귀국한 뒤 담배소송을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기꺼이 하겠다’고 대답했다. 40년에 걸친 미국의 담배소송 역사를 살펴본 뒤 담배만한 대량살상무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99년 3월 귀국한 뒤 금연운동협의회와 연락해 흡연 피해자 100명을 모집하면서 공청회를 열었다. 그해 9월 최재천 변호사가 1호 담배소송을 제기해 피해자 60명 중 확실히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린 6명을 골라 12월에 소송을 시작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판사가 판결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항상 뒷북만 친다.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12년을 바친 게 너무도 아깝다. 미국의 사법부도 과거에는 친기업적이었으나 지금은 시민권을 우선하는 판결을 내린다. 이번에 고법 판결을 보고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뭘 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꼈다. 귀국한 뒤 총선 때마다 출마 제안을 받았지만 후원금 받아 정치하는 게 싫어 정치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국회에 가서 입법하는 게 훨씬 더 빠르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배금자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등 소외된 계층 위해 활동, 하버드大서 담배소송 논문으로 석사학위

배금자(50) 변호사는 1961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됐으나 2년도 안돼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배석판사의 틀에 박힌 생활이 싫었다고 한다.

한때 법무법인 광장의 전신인 동서로펌에 들어갔지만 90년 단독 변호사로 개업했다.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김보은 사건과 군산 성매매 피해여성 화재사건,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문제 등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변호했다.

94년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법률상담을 진행하는 ‘오 변호사 배 변호사’라는 TV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유명세’를 포기하고 96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담배소송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99년 귀국한 뒤 12년 동안 담배소송을 이끌었다. 북한 주민의 친자 확인 및 유산 분배 소송도 맡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서울시 고문 변호사도 지냈다.

남편은 나승렬(54)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연수원장이다. 배 변호사는 오전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는 억척 주부다. 아들은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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