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문학 추종’ 자성… ‘한국문학의 근대와 근대극복’ 기사의 사진

‘모던’이 막 시작하려던 시점의 문학에서 ‘포스트모던’의 싹을 찾는 작업은 성공할까. 연세대 김영민·강릉대 양문규 교수 등 9명의 문학사가들이 ‘한국문학의 근대와 근대극복’(문학과사상연구회)을 냈다.

학계가 새삼 계몽기 문학과 일제 말기 문학을 조명하는 이유는 ‘구미의 근대를 추종하는 것이 한국 근대문학의 모습이라는 것에 대한 자성’ 때문이다. 기존 근대문학에 대한 성찰이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틀 안에서의 접근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서구의 근대를 넘어서려고 했던 당대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토대로 이뤄졌다.

그 중 하나가 나혜석의 재조명이다. 양문규 교수는 논문 ‘1910년대 이광수와 나혜석 문학의 대비적 고찰’을 통해 이광수의 계몽기 문학 넘어서기를 시도했다. 그는 우선 이광수가 10년대 계몽주의 문학의 중심인물로 오랫동안 연구돼 왔던 데 비해 나혜석은 여성주의 문학론이 부상한 뒤에야 문학사에 편입됐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근대를 목격했던 두 사람의 문학을 비교하는 작업은 유의미할 터. 이광수의 유학생 주인공들이 거창한 문명개화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소설 안에서는 공허한 동어반복만을 되풀이하는 데 비해 나혜석의 글쓰기는 대중을 선도하기보다 대중과 공동의 체험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동아대 한수영 교수는 “기독교, 유교,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한국의 가장 중심적인 얼은 무엇이던가? 여기서 나는 샤머니즘과 만나게 된다”고 했던 김동리 문학의 (세계적) 보편성에 대해 주목했다. 김동리가 초기부터 집착했던 ‘조선적인 것’은 물론 민족의 고유성을 뜻할 터이지만, 내부에만 머무는 ‘특수성’이 아니라 바깥을 향한 ‘보편성’으로 설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특수성이 곧 보편성이라는 명제는 당대인들보다 현대인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 끝없이 조선적인 것을 탐구했던 김동리의 문학론이야말로 ‘근대의 내부’에서 ‘근대의 바깥’ ‘근대의 극복’으로 나아가는 시도였다는 게 한 교수의 주장.

이 외에도 신문이라는 근대매체의 탄생이 한국어 문학의 전개에 미친 영향, 유학생 잡지의 문체 등 계몽기의 문제와 이찬·임화 등 일제 말기 문학가들의 작품이 논의됐다. 그간 암흑기로 치부됐던 40년대 문학에서 우리 근대의 복잡한 모습을 읽어내려 한 것도 이 책의 새로운 시도다.

양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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