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59) 그녀는 예뻤다 기사의 사진

휘영청 보름달이 시냇가에 뜬 밤이다. 낮게 깔린 안개가 간지러워 버들잎이 한댕거리고, 물살에 이는 물비늘은 달빛 아래 살랑댄다. 어느 겨를에 나왔나, 자드락에 소곳이 앉은 여인. 홀로 비단을 빠는데, 반드러운 머릿결과 갸름한 얼굴선 곱기도 하다. 뵐 듯 말 듯 웃음기는 수줍게 감추었다.

이곳은 완사계, 춘추시대 월나라 아낙들의 빨래터다. 그렇다면 두 말할 나위없다. 저 여인은 절세가인 서시다. 온 동네 여자가 그녀의 얼굴을 닮고자 찡그린 표정까지 흉내 냈다는 중국사상 으뜸가는 미색이다. 월나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던 오나라에 서시를 보냈다. 이른바 ‘미인계’였다. 나무꾼의 딸 서시는 타고난 교태로 적국의 우두머리를 무너뜨렸다.

서시가 빨래한 완사계는 후세 문인의 시문에 주살나게 등장한다. 이 그림 속에도 비단 빠는 서시와 오월동주의 고사를 노래한 글귀가 보인다. 그린 이는 인물화에 뛰어난 화원 이재관이다. 서시가 쪼그린 자세로 빨랫감을 냇물에 담근다. 가든한 차림새에 옴츠린 몸이 가녀리다. 버들은 하늘하늘, 물결은 욜랑욜랑, 서시의 미태에 견준 묘사가 상그럽다.

서시는 얼마나 예뻤을까. 그녀의 별칭을 보고 짐작한다. ‘침어(沈魚)’라고 했다. 서시가 물속을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얘기다. 물고기가 반할 정도니 사내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완사계의 아랫목에는 목욕하러 온 한량들이 사철 내내 득시글거렸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왜냐고? 서시가 옷을 빤 곳 아닌가. 볼썽사납긴 해도 한편 눈물겨워라, 저 남정네들의 안쓰러운 페티시즘이여.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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