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2.5 달러의 대가 기사의 사진

소말리아는 기아와 내전의 땅이다. 1974년과 86년 기록적 가뭄은 가난한 나라의 농업과 목축 기반을 와해시켰다. 다행히 소말리아에는 바다가 있었다. 유럽 식탁을 채울 록랍스터 같은 어종은 밥벌이가 됐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식민지 경쟁을 거쳐 독재로 직행한 소말리아. 신생국의 진정한 비극은 91년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시작됐다. 내전으로 소란한 바다에 낯선 배들이 출몰했다. 소문이 말하길, 유럽 배들이 쓰레기가 가득 담긴 대형 컨테이너들을 바다에 던지고 떠난다고 했다. 마을에는 병이 돌았다. 아프리카의 뿔을 끼고 3300㎞ 이어진 세계 5대 어장. 그게 이웃 부국(富國) 유럽의 싸고 뒤탈 없는 쓰레기장이 된 것이다.

세상이 몰랐다면 거짓말이다. 90년대부터 유엔환경계획(UNEP)은 유럽 선박의 쓰레기 무단투기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2004년 쓰나미는 수장된 증거까지 찾아냈다. 장기 실종자의 사체가 떠오르듯, 인도양 바닥을 떠돌던 컨테이너는 뚜껑이 열린 채 소말리아 어촌에 밀려들었다. 박스에서는 방사성폐기물과 중금속, 의료폐기물이 발견됐다.

유럽에서 합법적으로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t당 1000달러 안팎. 소말리아에서라면 t당 2.5달러면 충분했다. 식민지 모국 이탈리아와 소말리아의 질긴 악연일까. 유엔 관계자는 쓰레기 산업의 배후에 “이탈리아 마피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누군가 쓰레기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챙기는 사이, 소말리아인들은 입과 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소말리아 앞바다의 국제적 ‘해적질’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불법 어선들은 치어를 싹쓸이하고 소말리아 어부의 그물을 찢었다. 국적은 다양했다. 91∼99년 불법조업을 하다가 붙잡힌 선박에는 유럽(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영국)과 아프리카(예멘 이집트 케냐), 아시아(일본 대만 인도), 러시아까지 망라됐다. 한국 선박도 있었다(2009년 소말리아 독립 언론인 보도). 그렇게 한 해 4억5000만 달러 이상의 수산물이 유럽으로,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팔려나갔다.

소말리아인들은 95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 아랍연맹 등에 유럽 및 아시아 선박의 불법어로와 쓰레기 투기를 폭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정부가 제 기능을 할 때까지 국제사회가 나서 소말리아 바다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미 하늘 관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맡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다. 소말리아가 쏘아올린 긴급구조신호인 셈이다. 반응은 냉정했다. 조사는 미뤄졌고, 국제 감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부패의 악취가 소말리아 앞바다를 떠나지 않았다면, 피를 토하고 넘어진 게 소말리아 촌부뿐이었다면, 모든 건 이대로 평화로웠을지 모르겠다. 불행히도 바닷물은 흘렀다.

중금속과 독극물, 방사성폐기물로 부글대던 바다는 기어이 20년 학대의 결과물을 토해냈다. 어부들은 물고기 대신 사람을 낚기 시작했다. 그게 빠르고, 간편하며, 돈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찍이 깨달았다. 무지하고 포악할수록 계산은 더 빨랐을 터이다.

소말리아는 16년 전 그토록 원하던 국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데도 성공했다. 도와달라는 소말리아인의 요청을 재빠르게 거절했던 국제사회는 지난 몇 년 누구보다 신속하게 움직였다. 지금 아덴만 인근에는 40여개국 50여척의 해군 함정이 순찰하고 있다. 해적이 된 소말리아인들은 세계 각지의 법정과 유치장, 감옥을 떠돌고 있다.

평균 기온 30도. 사계절이 여름인 적도의 나라. 몇 개월 전 햇살 뜨거운 소말리아 해변을 걷던 해적 다섯 명이 부산에 수감돼 있다. 뼛속까지 찬 유치장 냉기 위에 앉아 그들은 지금 궁금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이곳까지 밀어온 해류는 무엇일까. 2.5달러짜리 쓰레기더미가 돌고 돌아 태평양 한 모퉁이에 쌓였다. 그건 지난 세월 누군가 저지르고, 모두가 방조한 어떤 범죄의 흔적 같았다.

이영미 특집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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