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탁계석] 선하게 이끌어가는 음악교육으로 기사의 사진

서울대 음대 성악가 김인혜 교수의 학생 폭행 시비 문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존경과 신뢰로 인생을 배우고, 예술의 높은 기량을 익혀야 하는 사제관계가 마치 원수 대하듯 하게 됐으니 볼썽사납다.

아직도 문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다. 사건의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인 도제식 교육이 잘못 받아들여진 것인지의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모두가 경험했듯이 학창시절 선생님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다. 학교마다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 있었고 손에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훈육주임도 있지 않았는가. 부수되는 티켓 강매나 선물도 우리의 교육적 환경에서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방법이 어떠했는가가 문제다.

세상이 변해 예전엔 말없이 수용되던 것도 이제는 아닐 만큼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고된 시집살이를 참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거꾸로 됐다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맹렬한 교육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도 교육이 가장 문제가 많고, 그러면서 G20 정상회의를 치를 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았는가.

진정한 도제교육은 동기부여

교육정책은 지금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만큼 교육에 관한한 편향된 잣대나 여론에 편승해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분명한 것은 남다른 교육열에는 항상 학부형들의 개입이 있어왔다. 성년이 되면 무관심한 외국과 달리 한국과 외국 교육의 근본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이런 사례는 유학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주장대로 10년 동안 불이익이 있었다면 왜 이제야 불거진 것일까. 여기에는 학생이 성장하는 동안에는 매니저나 컨설팅 회사가 전무하기에 선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암묵적 관계가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식당을 하며 자녀들을 뒷바라지해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나 지휘자를 만든 어머니도 있고 아들딸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덕에 사라장, 장한나, 박세리, 김연아가 있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일궈낸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강점이다. 국내 교육만으로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노의 김선욱이나 재학시절 베르디 콩쿠르에서 1등해 놀라게 한 바리톤 한명훈의 성과는 한국 선생들과 학생, 학부모의 합작품이지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최정상의 1등만 대접받는 스포츠나 예술에서 혹독한 훈련 과정은 불가피하고 이게 성공하면 로맨스이지만 실패하면 스캔들로 비화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유능한 선생은 학생의 동기를 보다 선하고 자율적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선생의 눈빛만 보아도 가슴 조이게 하는 카리스마나 옷매무새에서 그윽한 기품이 배어나고, 발걸음 소리에서 조차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 진정한 도제교육이 아닐까 싶다.

국악의 명인을 보면 그 실체를 보는 듯하는데 이런 동양적, 정신적 가치도 잘못 비쳐지면 학대로 해석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달라졌다. 예술가들이 교수법을 배우지 않고 젊은 나이에 교수가 돼 기술만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를 지배하는 유교적 관념과 스마트폰 시대의 급속한 변화가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교수의 학문적 역할과 사회 참여에도 혼선이 오고 있다. 아카데믹을 존중해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할지, 대중 연예인과 함께해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좋은지의 경계점도 묻고 있다.

예술교육환경 재점검 계기로

한국의 음악교육이 변해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교수,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육제도, 이를 보는 일반의 시각도 포함이 돼야 한다. 총체적인 예술교육 환경의 재점검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가 왔다. 이번 사건이 예술 인력 초과잉 시대란 심각한 고민을 풀기 위해서라도 예술계 풍토전반이 검토 대상이 됐으면 한다.

탁계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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