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메시야 대망 기사의 사진

리비아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의 혁명 바람이 사나운 봄바람마냥 지구촌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각국의 억압 받는 국민에겐 봄바람처럼 다가들지만 독재자에겐 황사 섞인 바람으로 다가와 자신들의 목을 죄는 악몽을 꾸게 할 것이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리비아 카다피. 그들은 한때 약소국가의 ‘희망의 아이콘’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다. 혁명가이면서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들. 체 게바라가 보헤미안적 혁명가였다면 카스트로와 카다피는 마키아벨리즘적 혁명가라고 해야겠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인민의 적’이 됐다. 한낱 부패하고 폭압적이며 무능한 군주일 뿐이다.

강력한 지도자에서 적으로

어느 경우건 지도자의 탐욕은 혁명을 낳는다. 그들로부터 고통 받는 백성은 하늘을 우러르며 메시야를 기다린다. 예수 당시에도 유대인 사이에 메시야 사상이 팽배했다. 다윗의 자손이 나와서 핍박 받는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을 믿었고, 더러는 인자가 천군 천사의 세력을 거느리고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수립할 것을 믿었다. 이러한 메시야 대망은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운동으로 이어지며 하나님 나라를 준비했다.

19세기 중·후반 조선과 청(淸). 탐욕스럽고 무능한 왕들 때문에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두 나라 백성도 메시야를 기다렸다.

임진왜란 이후 피폐를 거듭하던 조선은 결국 고종 때에 그 끝을 보고 만다. 요즘 말로 노래방을 좋아한 고종왕비 곤궁(坤宮·민비)은 배우들을 데려다 허구한 날 풍악을 울렸다. 고종의 시종 정환덕의 회고록 ‘남가몽’의 기록. “배우들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었고, 군인들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민간은 만신창이가 된 빈사세상이었다. 하늘의 경고(天警)가 여러 번 나타났다.” 1882년의 대가뭄과 임오군란, 이태 뒤의 갑신정변 등이 그것이다.

청나라는 19세기 중반 메시야를 기다리는 백성의 마음을 현혹한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 아예 태평천국이란 나라를 세워 한반도 두 배만한 면적을 차지하며 14년간 유지했다. 상하이에서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충칭까지 그리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마카오를 잇는 대국이 된 것이다. 교주 홍수전(1814∼64)은 여호와가 천부며, 예수가 천형, 자신은 예수의 동생이자 천왕이라며 혹세무민했다. 홍수전은 성령에 감응 받았다며 성경도 새로 썼다.

사이비 하나님군대는 승승장구했다. 당시 청나라 선교에 나섰던 서양선교사들이 동양에 기독교국가가 세워지는 것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들도 부패와 세습과 같은 탐욕으로 무너졌다.

한데 역사가들은 ‘태평천국’이 여느 반란 권력과 달리 14년간이나 체계를 갖춘 국가로서 존재했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그 유지의 본질은 사이비 신앙으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맥을 이어가는 평양의 기도

북한이 버전 업 된 태평천국과 같다. 홍수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정교하게 북한 주민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태평천국이 건국 직후 토지몰수와 개인축재 금지를 한 것처럼 농지개혁을 통해 경제체제를 확립하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이어지는 사상 개조로 주민을 말 잘 듣는 어린애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북한에도 북아프리카 혁명 봄바람이 미치고 있다고 한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성지였던 평양을 중심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들의 기도가 가느다랗게나마 맥을 잇는다고 한다.

북한 주민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는 유대인과 다를 바 없다. 기도할 때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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