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0) 꽃 필 때는 그리워라 기사의 사진

‘녹의홍상’은 연둣빛 저고리와 다홍치마다. 맵시 나는 여인네의 차림일진대, 거문고 메고 다리를 건너거나 방안에 오도카니 앉은 사내들이 웬일로 남세스런 태깔인가. 산과 바위에 잔설이 희뜩하고 눈발이 날리듯 매화꽃 아뜩한데 봄은 외통수로 짓쳐들어오니, 옳거니, 사내들 차려입은 옷매조차 빼쏘아 놓은 춘색이로구나. 큰일 났다, 봄 왔다.

희디 흰 매화는 눈과 다툰다. 볍씨처럼 가녀리게 돋아 푸르른 초목의 새순, 그 안으로 얼음송이와 눈꽃 매달린 듯이 지천으로 흐드러진 백매를 보라. 피어도 너무 피었다. 옥 같은 살결, 눈이 부시다. 단칸 초옥의 주인은 매향에 벌써 멀미가 나는데 찾아온 친구는 어쩌자고 거문고 가락으로 춘흥까지 돋우려 하는가.

짜임새 좋고 색감 부러운 이 그림은 전기가 그린 ‘매화초옥도’다.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으며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부린 송나라 임포의 은둔 고사를 본뜬 작품이다. 화가는 같은 중인 출신인 오경석을 짐짓 매화골 주인으로 등장시켜 이른 봄날의 우정 어린 호사를 함께 나눈다. 그림 속에 ‘오경석 형이 초옥에서 피리 분다’고 썼다.

매화 그리는 법은 야단스럽다. 등걸은 용이 뒤척이고 봉이 춤추듯, 가지는 학의 무릎과 사슴뿔처럼, 꽃은 산초 열매나 게의 눈처럼, 곁가지 얽힐 때는 계집 여(女) 자로 그리라고 했다. 하여도 화가는 법식에 옹심부리지 않는다. 굽고 기울고 성근 매화 자태도 안중에 없다. 활짝 피어난 우애가 더 귀해서이다. 꽃이 필 때는 오로지 그리워라, 사랑하는 내 친구 있는 곳. 이 봄 뉘랑 더불어 꽃향기 맡을꼬.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