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중국판 재스민혁명 가능할까 기사의 사진

“후야오방(胡耀邦) 추도식이 끝난 이후 학생 시위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러나 4·26 사설이 발표되자마자 상황이 급변하면서 대립이 격화됐다. 학생들은 사설에서 풍기는 태도와 정치적 낙인에 매우 분노했다. 학생들은 그동안 무슨 ‘반당·반사회주의’라거나 ‘계획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학생 시위가 그렇게 커지고, 그렇게 사태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바로 4·26 사설 때문이었다.”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자서전 ‘국가의 죄수(國家的囚徒)’에서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가 격화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4월 26일자 사설(4·26 사설)은 시위 학생들에 대해 ‘계획적인 반당·반사회주의 동란’을 일으키는 폭도로 규정했다. 그는 또 덩샤오핑(鄧小平)의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이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각지 13곳에서 지난달 20일 ‘중국판 모리화(茉莉花·재스민) 혁명’을 위한 첫 집회가 열렸다. 베이징에선 천안문 인근에 있는 왕푸징(王府井) 맥도날드 앞 광장에서 기습 시위가 벌어졌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튿날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재스민 혁명을 흉내낸 사람들은 ‘길거리의 거지’ 같았다”고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모리화 2차 집회 다음날인 지난 28일에도 인터넷 여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인터넷 사용자가 도시 젊은층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으며 광범위한 민의가 대변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폄하했다.

천안문 민주화운동은 민주화 요구와 함께 당시 물가 폭등, 실업난, 부정부패 등이 원인이었다. 중국은 지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에 육박하는 등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대학생과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근로자)들의 취업난이 이어지고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도 여전하다. 민주화 욕구는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2의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진단한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최고 지도부가 현재의 문제점을 적극 인식하고 직접 부정부패 척결, 물가 안정 및 취업대책 등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10%를 넘나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분배 중심의 온갖 민생대책 등도 민주화운동 가능성을 줄여주고 있다. 중국 당국의 강력한 공권력과 인터넷 통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당국이 민주화 움직임을 여전히 ‘길거리의 거지 행동’ 정도로 생각하거나 지나친 강경 대응에 나선다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공안 당국은 지난 27일 왕푸징 KFC 광장 등 2차 집회가 예정된 전국 27곳에 경찰력을 총동원해 강경 대응함으로써 집회 자체를 무산시켰다. 무장경찰과 경찰견까지 동원해 공포감을 조성했다. 행인은 물론 취재하던 일부 외신 기자들까지 폭도 다루듯 했다. 또 수십명의 인권운동가들은 공안에 끌려가거나 폭행당하고 격리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중국 당국은 강경 대응으로 집회를 무산시킨 데 만족할 수 있다. 향후 중국에서의 모리화 시위가 확산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비난과 강압으로만 이런 움직임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건 민주화 과정을 거친 많은 나라에서 이미 확인됐다. 중국 당국의 강경 대응에 대해 중국 국내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부 비난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외신기자 폭행 등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인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매주 일요일 모리화 집회를 갖자는 얘기도 다시 나오고 있다.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22년이 흘렀다. 지난해에는 공산당 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민주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중국 당국이 사회 저변에 흐르는 민주화 움직임에 대해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강경 대응하기보다는 현명하게 대처하길 기대한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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