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교회 이야기 기사의 사진

“한 청년은 세시간, 또 한 청년은 다섯시간 넘게 걸려 찾아온다. 감격이 흐른다”

이스라엘에 네 개의 한인 교회가 있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에 세 개, ‘봄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에 하나. 때로 변동이 있기도 하지만 대략 이 정도다. 오늘날 ‘땅 끝’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에 한인들의 기독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로 해마다 수백만 명의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팔레스타인과의 영토 분쟁과 유대교의 박해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인 금요일 저녁, 텔아비브 교회에 한 청년이 찾아온다. 세 시간, 또 어떤 날은 네 시간이 넘게 걸려서 찾아오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또 한 청년이 온다. 요트바타 키부츠에서 일하는 그는 다섯 시간 반, 어떤 날은 예닐곱 시간이 넘게 걸려 찾아온다. 안식일에는 대중교통도 운행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지나가는 차를 세워 얻어 타고, 몇 번씩 갈아탄 끝에 찾아오는 것이다.

청년들을 맞는 교회에 감격이 흐른다. 두 청년은 교회의 작고 정갈한 숙소에 몸을 눕힌다. 어둠 속에서 수월하지 않았던 여정을 떠올려본다. 찾아오는 동안 메마른 와디를 지나며 들었던 어떤 목소리를 묵상한다.

토요일 아침 예배에 참석한다. 현지 한국인들, 유학 온 신학생들, 상사 주재원들 몇 사람…. 특별히 누군가를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대단한 무엇을 기대하고 온 것도 아니다. 생명의 중심을 향해 외치는 말씀. 그 광야의 소리를 듣기 위해 온 것이다. 돌아갈 차편이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주 금요일 저녁에 찾아온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찾아와 그곳을 지킨다는 것은 그러나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느 아침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따라 에어컨이 고장나서 문을 열고 예배를 드렸다. 자연히 찬양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갔다. 찬양을 하는 중에 외국인 부부가 조심스럽게 예배실로 들어왔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바로 그 찬양이었다. 교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외국인 부인이 계속해서 눈물을 훔쳤다. 가사는 못 알아들어도 멜로디야 같은 거니까 무슨 스토리가 있는가 보다 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온 부부다. 지나가다 찬양에 이끌려 예배당에 들어오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아프리카 선교사였는데, 이 찬송이 바로 아프리카에서 치러진 아버지 장례식 때 불렀던 노래다.” 딸은 아버지의 정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위로해 달라고 했고, 교우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가졌던 헌신과 영혼사랑의 열정이 그들 후세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멀리서 와서 한두 시간을 나누고 청년들은 다시 돌아간다. 다음 금요일 오후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교회, 혹은 광야는 무엇인가.

한국교회에 꽃샘추위가 심하다. 연초에 소망교회 담임목사 폭행 사건이 발생하더니 그동안 수면에서 부침하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솟아올라 세간의 뭇매를 맞고 있다. 타종교와의 갈등, 대형교회의 내부 불화,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위, 물질에 대한 탐닉, 선거 부정….

여기에 이슬람채권 도입을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입장에 대한 거부 일색의 여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은 특정 사업에 투자하는 채권에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식의 수쿠크 도입이 어떤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외국에서는 도입하더라도 어떤 조건 아래서 도입하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왜 문제가 되는지를 살피기보다는 기독교계가 반대하니까 기독교계의 주장에 반대하겠다는 식이다.

교회는 잘못한 것은 매를 맞아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금 많은 매를 맞고 있다. 무차별적이고 가혹하더라도 침묵하며 견뎌야 할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누구도 나눠주지 못하는 생명을 나눠줄 사명을 가진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도, 세상도 말이다. 청년들이 왜 그렇게 멀리서 찾아오는가.

임순만 수석 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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