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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신종수] 캥거루족과 기성세대

[데스크시각-신종수] 캥거루족과 기성세대 기사의 사진

요즘 ‘세시봉’을 소재로 한 TV 가요 프로그램이 인기다. 아이돌 그룹이 판치는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한때의 유행일지는 알 수 없으나 흘러간 옛 노래에 대한 잠재수요가 많다는 점이 확인됐다.

세시봉과 비슷한 ‘7080’도 있다. 이들 프로는 일종의 복고풍이지만 ‘가요무대’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미 은퇴한 고령자들이 가요무대를 좋아한다면, 세시봉이나 7080은 구매력을 가진 40∼50대가 주된 수요층이다. 이들 중에는 712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포함돼 있어 수적으로도 많다. 방송사들이 이들의 수요를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40∼50대는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세대가 대부분으로 정치적 정향성과 결속력이 강하다. 386으로 불리는 그룹은 이미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사회적 여론 형성과정이나 경제활동에서 주력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 주도로 정년을 연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신들이 은퇴했을 때를 대비해 각종 노인복지 정책을 만들 시도를 하고 있다. 주요 소비계층이기도 한 이들의 은퇴 이후에는 실버산업도 활기를 띨 것이다. 반면에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젊은층은 구매력이 없다. 창의성은 뛰어나지만 이렇다 할 역사적 체험도 하지 못해 386보다 결속력이 약하고 파편화돼 있다.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베이비붐 세대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질 경우 다른 세대들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을 늘리면 그렇지 않아도 고질적인 청년실업이 가중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직장에 오래 눌러 있는 한 젊은이들이 입사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거나 비정규직 생활을 해야 한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것도 젊은층에게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분석이 있다. 어렵게 취직한 20대 젊은이들이 ‘88만원’의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생활을 빠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은 가뜩이나 청년실업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43.8%로 10년 전인 2000년(47.2%)에 비해 3.4%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는 32만3000명 늘어 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청년 실업률은 2년 연속 8%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세대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윗세대가 회사에서 나가주지 않아서 자신들이 취직을 못하고 있다는 젊은층의 피해의식과,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캥거루족’이 문제라는 기성세대의 힐난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방식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기성세대들은 취직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청년실업은 저성장 시대의 초입으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과거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성장의 혜택으로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자립심이나 도전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비전을 펼칠 만한 평생직장을 찾지 못해서 캥거루족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기성세대들이 자기 밥그릇만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허기진 청년들에게 밥을 덜어 주는 심정으로 그들과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도리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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