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영] 기도하는 대통령을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엊그제 한국교회가 주최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뜨겁다. 대체적인 여론은, 일국의 대통령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에 충실할 권리가 있으나 다양한 종교를 가진 국민의 최고지도자인 만큼 공개적인 자리에서 타 종교에 위화감을 주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런 지적은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일리가 있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이 땅의 종교계가 대통령을 초청하는 행사시에 유념하는 것이 좋겠다.

겸손한 신앙고백의 표현이다

필자는 이번에 이 대통령이 보여준 신앙의 표현에서 몇 가지 의미를 찾아보면서, 종교 간에 관대한 이해를 통해 상생과 화합을 위한 보다 성숙된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먼저 우리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적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의전 상으로나 국민정서 상 대단한 용기와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이 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 국가조찬기도회를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서구에서도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오직 대신관계(對神關係)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신을 향한 인간의 가장 낮은 자세의 기도가 바로 엎드려 무릎을 꿇는 부복기도(俯伏祈禱)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부복기도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40일을 성산에서 금식하며 엎드려 기도했으며, 이스라엘의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 옷을 찢으며 부복기도를 했다. 다윗 왕은 신하의 아내를 범했다가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침상에 엎드려 참회기도를 했으며,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엎드려 처절히 중보기도를 했다.

역사 속에서도 지도자의 낮은 자세의 기도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수행할 당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포지 계곡의 전투를 위해 폭설 위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치열했던 남북전쟁의 와중에 수시로 전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이승만 대통령도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건국과 함께 개헌국회가 열렸을 때 종교를 초월하여 역사의 주관자에게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이처럼 시대마다 지도자들은 국가적인 위기나 대변혁의 시간에 가장 낮은 자세로 기도했던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교회는 새벽을 깨우며 국가와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으로 이해해야

이번에 이 대통령이 행사진행의 방법에 따라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 역시 자신이 믿는 하나님 앞에 한 성도의 신분으로 엎드린 겸손하고도 흔들림 없는 신앙고백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동시에 그의 부복기도는 국정의 책임자로서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가안보를 위한 간절한 염원의 표백(表白)이다. 아울러 평소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해 온 대통령으로서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엎드린 것은 곧 국민을 향하여 엎드린 섬김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비판의 양면성을 고려할 때, 만일 이번 행사에서 모든 참가자들은 부복기도를 했는데 유독 대통령만 의자에 앉은 채 기도했다면 이 역시 교만한 태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국민은 대통령이 오해와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하지 못하는 지도자이기보다는 그것을 행동으로 진솔하게 보여주는 용기 있는 지도자이기를 더 바랄 것이다. 정직과 용기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주요 종단 간에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관용하는 성숙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이웃 종교를 배려하는 언행에 소홀함이 없도록 한층 더 유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종교 간의 화합은 국가발전의 동력이자 사회통합의 시금석이다.

김성영 백석대 석좌교수·전 성결대 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