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국민 인내력 시험하는 정치권 기사의 사진

전두환 정권은 임기가 다해 가자 내각제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권력자들의 정치 장악력은 여전했다. 7년 단임의 다짐이 안 지켜질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팽배했던 시절이다. 대통령의 위세가 여일할 수 있었던 게 그 덕분이었다.

당시의 집권세력은 임기 후에도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줄 제도적 장치로서는 내각제가 제격이었다. ‘평생동지’라고 했던 민정당이 집권을 계속할 수 있다면 당시 대통령은 변함없는 집권자로, 그게 불가능하다 해도 후견인(혹은 상왕)의 위상은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역대 정권이 개헌 시도한 까닭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 개헌을 추진했다. 그는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 ‘원 포인트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 4년 연임안을 제시했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각 정당은 울며 겨자 먹기로 ‘18대 국회에서 개헌 추진’을 약속하고 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넘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한나라당 쪽에서 다시 개헌론이 제기됐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자는 주장이다.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되는 국무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고 통치를 하자는 것이겠다. 권력은 의석수에서 나온다. 의석수, 그러니까 의회 지분이 많은 정당이나 정파의 리더가 실질적인 집권자 역할을 하게 되는 권력구조다.

명분과 명칭에는 차이가 있지만 계산은 하나다. 개헌 당시의 집권자가 임기 후에도 정치적 리더십을 장악,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빚어지는 직전 정권 격하 및 단죄의 악순환을 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회와 정당들의 정치력과 도덕성이다. 상시적 대결 대립 투쟁의 정치 관행을 극복해내지 못할 경우 행정권까지 가진 의회는 맹수들이 먹잇감을 다투는 밀림이 되고 만다. 정당의 리더들과 국회의원들이 고도의 도덕성으로 무장하지 못할 때 국민은 수백명의 집권자들이 벌이는 권력과시의 향연을 감내해야 한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수시로 이 위험성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자금법 개정 시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되어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동료 의원을 구출하면서 법이 막고 있는 각자의 돈 길을 트겠다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언제까지

현직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의원들은 정당 구분 없이 거의 언제나 이를 부결시킨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조소와 비난이 쏟아지지만 거기에 굴복할 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한다. 기소된 의원들까지 구출해내겠다는 기세다. 징벌의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을 고치거나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단 10분 만에 이를 통과시켜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겼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다.

불공대천지수인 양 사생결단하다가도 세비 인상, 의원 연금법 제정에는 한마음이 된다. 정부 예산안 심의는 무한정 미루면서도 지역구 사업비는 이심전심, 다투지도 않고 함께 챙긴다. 누가 이들의 재주를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입법만이 아니라 행정 기능까지 가질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는 기다려 보나마나다.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리더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보도되기로 두 정당의 원내대표들 공히 3월 국회 중엔 정자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하지 않을 듯이 말하고 있다. 무리하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가 대통령의 거부권에 저지당하기라도 하면 정치적 궁지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 뻔뻔함을 고칠 약은 정말 없는 것인가. 국회의원 및 정당의 이해와 직결되는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경우 성안 단계까지는 민간 전문가 집단에 맡기고 국회는 가부 표결만 하게 하면 아마 많이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 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당들이 응할 리 없다. 유감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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