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영호] 재일교포는 정치헌금도 못하나 기사의 사진

한국에서 국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기습 처리 문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때 이웃 일본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상이 재일한국인으로부터 25만엔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임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금액과 상관없이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으로부터 정치활동에 관한 기부를 받는 것을 금지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고 하여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요즈음 민주당 내각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형편없는 가운데 마에하라는 그런대로 청렴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집권당의 버팀목이 되어 왔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영토 문제에서 단호한 자세를 보였고 국토교통상 재직 때부터 인프라 수출을 위해 세일즈 외교에 앞장서기도 하여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한편 그는 한국인 지인이 많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 한국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런 사람이 그를 아끼는 불고기집 아주머니로부터 받은 정치헌금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사퇴에 몰린 것이다.

외국인 기부로 간주하기 때문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직자가 외국인으로부터 정치헌금을 받는 것에 대해 법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물론 과거 냉전시기 자민당 정권이 미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법망을 피하거나 초월하여 외국인 자금을 받아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공직자가 외국인이나 외국 회사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것이 밝혀지면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 민주당 의원 가운데 일부가 몇 푼도 안 되는 정치헌금으로 마에하라가 사임한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오히려 야당의 공격을 부채질하고 민주당의 입지를 더욱 좁힐 뿐이다.

문제는 재일 한국인 아주머니를 단순히 정치자금법에 규정된 ‘외국인’으로 볼 수 있는가에 있다. 그녀는 재일동포 2세 혹은 3세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일본의 국적법에 의해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특별영주권자다. 평상시엔 일본식 이름을 쓰며 언어도 한국어는 제대로 모르고 일본어를 구사한다. 정체성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지 않고는 이런 사람이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고 판별하기는 어렵다.

특별영주권자 내국인 대우를

근래에 들어 한국식 이름을 가진 채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있는 현상에서 보면 재일동포 가운데 누가 일본인(일본국적자)이고 누가 한국인인지 구분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행위인지도 모르고 정치헌금을 기부한 아주머니가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국적을 묻지 않은 정치가를 곤궁에 빠뜨린 것이다.

대부분 재일 한국인으로 이뤄진 특별영주권자들에게는 일시적인 일본 체류자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선거권이 없다. 일부 지방단체가 자율적으로 주민투표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선거권은 부여하고 있지 않다. 지난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 임할 때 민주당은 선거 공약에 정주외국인 지방선거권 부여에 대한 적극적인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고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반이 넘도록 선거 공약을 실천하는 데 아무런 가시적 성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 반면에 우익단체들은 민주당 집권 초기부터 보수 야당을 업고 외국인 선거권을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다 민주당 정부가 경제 회생의 비전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수뇌부의 정치자금 문제, 미숙한 국정수행 문제, 연립정당과의 부조화 문제, 당 지도부 인사들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 등으로 민심을 잃게 되면서 정주외국인 선거권 부여 움직임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최영호(영산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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