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프로배구 정규리그에서 1위를 확정지었다. 축하한다. 만년 3위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그동안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양강 구도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었기에 더욱 축하하고 싶다. 남자 배구하면 삼성 아니면 현대라는 인식이 깊이 배어 있어 다른 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기록을 보면 이런 인식은 당연해 보인다. 프로배구 지난 5시즌을 보면 챔피언 결정전에는 항상 삼성과 현대가 올라왔었고 정규리그 우승도 두 팀이 나누어 가졌다. 이런 상황이니 두 팀 아닌 다른 팀이 정규리그 1위를 한 것은 당연히 뉴스거리다. 그리고 거의 모든 매체는 대한항공이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을 통해 우승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종목과 관계없이 우승한 팀은 모두 좋은 팀워크를 갖고 있다. 스타가 있어도 팀 전력의 일부로 쓰일 뿐이다. 즉 시스템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감독 이야기가 따른다. 대한항공의 경우 특출한 선수는 없지만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과 승리를 향한 집념이 선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며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항공이 챔피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챔피언 결정전이 남았기 때문이다.

챔피언이라는 말은 방어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지난 대회 우승자가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해 타이틀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회 챔피언은 삼성화재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화재가 막강한 챔피언이라는 데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 3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겼다. 현대와 삼성의 양강 구도라고 하지만 지금 챔피언은 삼성이다. 이런 챔피언에 대한항공이 도전하기 때문에 흥미가 생긴다. 매년 우승자가 바뀐다면 챔피언이라는 말도 빛이 바랠 것이다. 챔피언이 강할수록 흥미가 더해지고 그런 챔피언을 격파하면 도전자는 더욱 빛나게 된다.

올해는 그런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 우선 새로운 도전자가 생겼다. 대한항공이다. 그런데 삼성화재가 결정전에 올라오지 못하면 싱겁게 된다. 다행히 삼성화재는 악전고투 끝에 기회를 잡았다. 1, 2라운드에서 바닥을 헤맸지만 후반 연승에 힘입어 5할 승률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주전 선수 부상과 세터 교체로 고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1일 현대전 승리를 보면 팀이 궤도에 어느 정도 오른 것 같다. 게다가 단기전은 정규 시즌과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시즌 대한항공은 플레이오프에서 쓴맛을 보았다.

누구도 승부를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대한항공의 선전이 빛을 발휘한 만큼이나 삼성화재의 존재감도 무겁게 느낄 수 있었다. 대한항공이 결정전에서 승리한다면 그 영광의 절반은 챔피언 삼성화재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산이 높을수록 오른 자의 기쁨이 크지 않은가.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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