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한창] 교회의 공공성 기사의 사진

“사탄은 예리한 신학자다. 사탄은 성경에 능통하다. 그러나 사탄은 성경과 신학을 이용할 뿐이다. 한국교회는 뜨거운 가슴을 회복해야 한다.”

어느 신학자의 깊은 탄식이다. 교회와 크리스천은 세상 속에서 공공성(公共性)을 갖는다. 세상은 기독교 교리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회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교회 재정이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는 귀를 쫑긋 세운다. 불신자는 교리가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신자는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왜곡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좀 관용적일 필요도 있다. 모든 문제를 ‘옳다’와 ‘그르다’, 모든 사람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나움도 극복해야 한다. 교회가 비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싸우면 전도의 문이 막힌다.

사탄은 분쟁의 틈을 노린다

“요즘 교회 청년들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얄궂다. 여 집사의 화장이 너무 야하다. 젊은이들이 예의가 없다….”

이런 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에는 분노를 발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과 동떨어진 문제에 대해서는 좀 관대했으면 한다. 사탄은 항상 고성과 분쟁의 틈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중세 사제들이 ‘바늘 위에 천사 몇 명이 앉을 수 있을까’를 놓고 싸우는 동안, 유럽교회는 몰락했다. 정교회가 ‘사제들의 가운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로 맹렬히 다투는 동안, 러시아는 공산화되었다. 희랍교회 지도자들이 성수(聖水)에 빠진 파리 한 마리를 꺼내놓고, ‘파리를 건져낸 이 물이 성수인가 아닌가. 그러면 성수에 빠진 파리는 죄 씻음을 받은 것인가 아닌가’로 논쟁하는 동안, 이슬람교가 세력을 확장했다.

요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을 놓고 관심이 뜨겁다. 행사의 본질은 ‘기도’인데, 오직 대통령의 ‘무릎’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교회 장로인 대통령이 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무릎은 겸손의 상징이다. 무릎기도는 비상기도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대통령의 독실한 신앙행위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분분한 해석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교회를 얕잡아 보지 마라

낙타는 주인을 등에 태울 때 반드시 무릎을 꿇는다. 기도도 이런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도록 낙타처럼 겸손히 무릎을 꿇는 것이다. 기도가 본질이고, 나머지는 현상이다.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좀 너그러워야 한다. 한국교회가 절대 권력을 무릎 꿇렸다느니, 오만방자하다느니 하는 말은 본질과는 한참 벗어난 것이다. 불교 신자인 대통령이 석탄일 행사장에서 합장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비난할 이유도 없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너무 얕잡혔다. 일부 언론은 한국교회를 희화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은근히 타종교와의 갈등을 부추길 때도 있다. 왜 그런가. 한국교회가 외부 공격에 대해서는 너그럽지만, 내부의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관용이 없었다. 그래서 세상이 교회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교회는 공공성을 갖는다. 교회라면 어쩐지 믿음이 가고, 목사나 장로라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이 가는 그런 모습이 회복되어야 한다. 입으로만 잘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이다. 사탄은 성경에도 통달하고, 말도 잘하지만 행함이 없다. 혹시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말 잘하고, 인색한 사람들’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이다.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