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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평화 프로그램 이재영 간사 … “회복적 정의, 피·가해자 동시 치유 가능하죠”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평화 프로그램 이재영 간사 … “회복적 정의, 피·가해자 동시 치유 가능하죠” 기사의 사진

한 중년 여성이 서울가정법원의 한 방으로 들어선다. 이 여성은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주저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아들을 때려 실명 위기까지 몰아간 가해자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온 것이다. 막상 마주앉으니 더 화가 치밀어 한참 악다구니를 썼다. 얼마 후에야 그는 가해자도 자기 아들처럼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인생도 창창한데, 꼭 감옥 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책임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자랐으면 한다.” 한참의 대화 끝에 사과를 받아주기로 하고 방을 나선 여성은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도 “이제야 발을 뻗고 자겠다”고 했다.

이는 한국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센터 평화 프로그램 담당간사 이재영(39)씨가 서울가정법원 화해권고위원으로서 최근 겪은 실제 사례다. ‘회복적 정의’ 및 갈등 조정 전문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21세기에 기적을 만나고 싶다면 화해 전문가로 나서라”고 조언한다. 그는 한국에 몇 안 되는 회복적 정의 전문가다. 미국 이스턴메노나이트 대학에서 ‘갈등·분쟁 전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 대학 하워드 제어 교수의 제자로 그의 대표적 저서이자 이 분야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책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출간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에 돌아와 현 김경중 총무와 함께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를 세웠고, 시민단체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의 갈등해결센터와 함께 갈등 조정자, 화해 중재자 양성에 힘써 왔다. 2007년에는 서울경찰청 의뢰로 ‘피해자-가해자 대화 모임’을 시범 운영했으며 지난해 5월부터는 서울가정법원 소년 단독이 위촉한 화해권고위원으로서 소년 사건의 화해권고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는 현 사법 시스템의 근간이 된 응보적 정의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응보적 정의가 범죄자의 형량을 얼마로 할지에 집중하는 반면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 재발 방지 약속 등을 통해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씨는 지금까지 진행된 화해권고 모임 40여건 중 대부분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전한다. 청소년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스스로를 ‘부모와 사회가 방임한 피해자’라고 여기는데, 아무리 강하게 처벌해 봐야 마음 속 불만만 커진다는 것. 그러나 피해자와 직접 만나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깨닫고 사과와 반성을 통해 화해하고 나면 다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피해자들도 보통 불안과 억울함에 시달리는데 가해자와 직면해 사과를 받고 화해하면 상당 부분 회복된다면서 그는 “현 사법 시스템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효과”라고 강조했다.

요즘 이씨는 각계에서 회복적 정의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고 있다. 기독교세진회 초청으로 다음달 교정위원들을 교육할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크리스천 교사들에게도 강의했다.

그는 “화해 전문가 양성에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복적 정의 자체가 메노나이트 파 기독교인들이 처음 주창한 것으로 성경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신성, 즉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는 믿음, 원수조차도 사랑하고(마 5:44) 법관 앞에 가기 전에 화해하라(눅 12:58)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이 일이야말로 교회의 책무입니다.”

그의 궁극적 소망은 교회 부설 평화센터 또는 화해센터들이 지역마다 생기고 국가 및 지역 경찰과 연계해 경미한 고소고발, 청소년 사건의 중재에 나서는 것이다.

일반인도 ‘회복적 정의’ 실천가 되는 길 있어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진행자, 갈등 조정자, 화해 중재자가 되는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가 일반인 대상 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오는 18일부터 3주간 매주 금요일에 진행되는 과정이 있다.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진행자 훈련’은 지난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달 과정에는 22명이 참여했다. 이 두 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다음달 16일부터 심화 과정이 이뤄진다. 이 과정 수료자를 위한 공인 자격증은 아직 없지만 주강사인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이재영 간사는 “훈련 이수자 중 성과와 자질이 충분한 사람들에게는 향후 회복적 정의 실천가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간사는 “서울을 비롯한 가정법원들이 현재 비법조인 화해권고위원을 확대하거나 신설할 계획인 것을 비롯해 활동 여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은 서울 역삼동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에서 3주간 금요일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24시간 과정으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교재비와 중식비 포함, 15만원(kac.or.kr·02-554-9615).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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