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2) 물고기는 즐겁다 기사의 사진

옛 그림에서 요모조모 상징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좀 헷갈릴 작품이다. 피라미는 어린 시절을, 잉어는 과거 급제를 뜻한다. 새우는 자재한 처신과 통하고, 물풀은 타향에서 떠도는 신세와 비슷하다. 그러니 이 그림에 나온 소재로 이야기를 짜 맞추기는 어렵다. 아귀가 맞지 않는다. 화가는 무슨 요량으로 그렸을까.

이 작품은 ‘어락도(魚樂圖)’다. 물고기의 즐거움이 주제다. ‘장자’에 저 유명한 논변이 나온다. 장자가 “물고기가 즐겁게 노닌다”고 하자 혜시는 “물고기도 아니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찌 아느냐”고 반박한다. 장자는 “너는 내가 아닌데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찌 아는가”라고 퉁을 주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물은 것은 내가 안다는 것을 네가 안 것”이라고 답한다.

장자와 혜시의 다툼은 정작 물고기가 아니라 말을 가지고 노는 꼴이다. 희롱과 궤변이 뒤섞여 있다. 장자의 속내가 궁금하다. 물정은 모름지기 인정에서 파악된다고 새길 수 있을까. 아퀴를 짓는 장자의 말이 그림 속에 적혀있다. “그것을 알고도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것을 물가에서 알았다.” 물고기를 알려면 내가 물가로 나가야 한다.

화가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다. 그는 실물을 중시한 이용후생론자다. 물고기의 비늘까지 자세히 묘사한 솜씨가 문인의 여기를 넘어섰다. 그는 어느 글에 썼다. ‘물맛이 어떤가 물으면 사람들은 아무 맛이 없다고 한다. 그대는 목마르지 않다. 그러니 물맛을 무슨 수로 알랴’ 무릇 간절해야 안다. 물고기의 즐거움뿐이랴. 간절하면 물속 물고기의 목마름도 알게 된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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