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치적 평가에 연연할 때 아니다 기사의 사진

“우리는 일본 원전폭발보다 더 가공할 위험, 북핵 문제를 머리에 이고 있다”

지난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현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 묘한 평가를 내려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적을 묻는 기자 질문에 “계속 성장을 해 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고 반문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포퓰리즘으로 기울어 낙제점이나 겨우 면할 정도라는 냉소적인 평가로 볼 수도 있다. 지난 3년간 규제완화와 환율, 금리안정 등 기업친화적인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모범을 보였다고 자부해온 정부 입장에서는 서운한 감정이 들 만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 측에서 몹시 섭섭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나라당과 경제부처 주변에서는 정부 정책 덕분에 경제회복에 가장 큰 혜택을 누린 대기업 총수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좌파 성향의 포퓰리즘 정책에 위축된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 여망에 힘입어 탄생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기대에 걸맞게 규제의 전봇대를 과감하게 뽑아버리고 강한 추진력으로 경제회생에 앞장서 나갔다. 덕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위기를 가장 빠르게 탈출했으며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 국가 위상을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 선거 당시 약속했던 대로 300억원이 넘는 개인재산을 재단 출연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 정도 성과라면 경제 대통령을 원했던 국민 기대에 상당히 부응했다고 자부할 만했다.

하지만 역풍이 불었다. 각료인선에서 인재 활용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하고 측근 중심으로 발탁한 결과 처음부터 ‘강부자 내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로 기세를 과시한 반대세력들은 감세정책을 ‘부자감세’라고 공박했다. 정부는 징벌적 수준의 세금폭탄을 해체해 시장기능과 세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야당과 반대세력들의 공세가 차츰 먹혀들었다. 정부와 여당이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한 탓이 크지만 여당 내에서도 포퓰리즘 유혹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 전열이 흔들렸다.

이 역풍은 이명박 정부가 기대했던 경제 대통령 이미지 위에 부자 대통령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수출에 이어 아부다비 유전개발 참여로 경제 분야에서 여전히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면서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 회장 발언에 대한 민감한 반응도 이런 평가에 따른 섭섭한 심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와 주변의 형편은 한가하게 경제 치적 홍보나 평가에 매달릴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 열도는 초대형 지진과 쓰나미, 그에 따른 원전 폭발로 미증유의 재난을 겪고 있다. 정부는 단기 성적 평가에 얽매여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일본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경제 분야의 보완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일본 인명구호와 복구 대책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는 초대형 지진 이후 원전 폭발과 방사성 물질 누출이 공포를 자아내고 있으나 우리는 사고 원전보다 훨씬 가공할 위험을 지닌 북핵(北核)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북핵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일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최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치적 평가 따위는 후세에 넘기고 생존을 확보하는 과제에 전념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천안함 피격사건 1주기가 오는 26일로 다가왔다. 천안함 46용사와 한주호 준위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목숨을 희생했는지 꼭 기억해야 한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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