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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병권] 간바레 닛폰, 그러나…

[데스크시각-박병권] 간바레 닛폰, 그러나… 기사의 사진

대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 일본을 위해 박찬호와 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와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등 한류스타들이 잇달아 성금을 낸 것은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결코 가까울 수 없는 일본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쨌든 자본주의 아래서 스타는 하나의 완전한 상품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착한 행동은 두 나라의 선린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의 선행 이후 일본을 돕자는 기운이 온 나라에 퍼져 정신대 할머니는 물론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독립투사들의 후손들도 선뜻 이 대열에 동참했다. 장한 일이다. 좁게는 우리 한민족을 포함한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발로요, 넓게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 기독교 정신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같은 우리들의 노력을 보면서 내심 찜찜한 감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고베 대지진 때도 우리는 적지 않게 일본을 도왔다. 이웃나라의 불행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마뜩하지 못하다는 감정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아무리 일본을 위하고 일본을 생각한들 되돌아오는 것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이 무슨 대가를 바라거나 생색을 내려고 일본을 돕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가 양국의 과거사를 왜곡해도 기존의 애매한 입장을 되풀이해 왔고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일부 일본 정치인들은 잊을만하면 쓸데없는 발언으로 우리 국민을 흥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그렇게 미덥지 못한 이웃 아닌 이웃이다.

이런 점에서 센고쿠(戰國) 시대 무장 가운데 한 명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라이벌 요시모토의 목을 벤 뒤 교토로 상경하면서 감행한 작전은 되새겨볼 만하다. 무법천지였던 당시 천하를 제패하려는 노부나가의 목을 노리고 다른 무장이 보낸 자객들이 그를 뒤쫓았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자객들이 방심한 채 술을 마시고 있던 한밤중에 그들의 숙소를 급습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내쫓는다. ‘오와리의 멍청이’라고 소문난 그였지만 속내에는 천하제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은밀히 실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이야기이겠지만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연상되는 장면이다.

아시아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봉건제 비슷한 과거를 가진 일본은 한때 무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유교가 중심된 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힘을 숭상하고 강자에게는 절대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때로 자신이 강해지면 주군을 겨냥한 배반도 서슴지 않고 감행한다. 천하를 주름잡던 노부나가도 부하의 반란 때문에 나이 50을 채우지도 못하고 할복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일본의 대지진 여파는 아직도 수습되지 않고 갈수록 확산일로에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망자나 실종자 통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피해 규모도 산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마실 물조차 부족해 생수판매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몸에 밴 질서의식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혼란을 부르지는 않아 시간이 걸리겠지만 곧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마음씨 좋은 세계의 이웃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어 머지않아 그들의 얼굴이 다시 환해질 것이다.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이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도 고통받고 있는 일본을 도와주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 두 나라가 예전의 앙금을 벗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병권 체육부장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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