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로 메운 원고지 2000장의 힘… ‘7년의 밤’ 기사의 사진

7년의 밤/정유정/은행나무

그녀는 힘이 세다. 혼자 야간 산행을 즐길 만큼 겁이 없다. 간호사로 일할 당시 5년 동안 줄곧 중환자실에서 일했다. 숨진 환자들이 영안실로 내려가는 것을 무수히 지켜보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어머니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써서 인터넷 통신망인 유니텔에 올려보았다. 하루 접속 건수가 2000회를 넘었다. 자신이 붙었다.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전했던 5000만원 고료의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2007년)을 수상했다. 남들이 청소년 소설만 쓰는 작가로 인식하는 게 싫어 다시 도전한 1억원 고료의 세계문학상(2009년)도 거머쥐었다.

시상식이 끝난 그해 2월말 광주광역시 진월동의 아파트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때 현관에 붙은 전단지를 보았다. 12살 남자 아이를 찾는다는 내용의 전단지였다. 전율이 일었다. 얼마 후 남자 아이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남자 아이는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채 차에 실려 인근 댐으로 옮겨진 뒤 공기총을 맞고 숨진 살인사건의 피해자였다. 가해자 역시 평범한 마을 주민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테리어 업자였다. 광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남자는 경찰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했지만 동기는 말하지 않았다. 우발적인 범죄였다.

평범했던 남자가 왜 최악의 선택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욱’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인데 ‘욱’하는 성격은 인간 모두의 본능이기도 했다. 인간은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소설을 써내려갔다.

소설가 정유정(45)의 신작 장편 ‘7년의 밤’(은행나무)은 이렇게 탄생했다. 작품은 액자 소설의 형태다. 안쪽의 이야기는 7년 전, 인공댐인 세령호 순환도로에서 우발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소녀를 목졸라 살해한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사내와 딸을 죽인 범인의 아들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피해자의 아버지의 숨막히는 대결이다. 바깥의 이야기는 세령호 사건으로부터 7년 후,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세상을 떠돌던 아들이 아버지의 사형집행소식을 접하면서 그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된다.

15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유정의 인상은 강했다. 원고지 2000장 분량의 장편을 탈고한 집념과 고집이 묻어났다.

-왜 액자 소설의 형식인가.

“주인공의 회상을 다루기 위해서 이 형식이 필요했어요. 큰 액자와 작은 액자가 안과 밖의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나중엔 실타래처럼 두 이야기가 함께 풀리지요.”

-분량이 요즘 장편 소설의 2배가 넘는 2000장에 달하는데.

“개인적으로 장편은 비옥한 진창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독자가 실컷 웃고 실컷 운 다음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게 제 글쓰기의 목표죠. 메이저출판사에서도 오퍼가 있었는데 그쪽에서는 원고지 800장짜리 장편을 원하더군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분량에 담을 수 없기에 거절했어요.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싶거든요. 최대한 내 방식대로 쓰고 싶어요.”

-따로 문학을 공부하지 않은 간호사 출신인데 어떻게 자질이 있는지 알게 됐나.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모두들 침을 꼴깍 삼키며 귀를 기울였지요. 나름 육성의 힘이 있었나 봐요. 그 후로도 독서량은 꽤 많은 편이었어요. 호러나 스릴러 등 장르문학도 닥치는 대로 읽었고 헤밍웨이와 찰스 디킨스와 스티븐 킹은 정말 좋아하는 작가죠. 디킨스처럼 소설 속 캐릭터가 독자들을 안달 나게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이 소설은 여성작가들이 잘 쓰지 않는 하드 보일드한 사실주의 기법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여성 작가들은 감성이나 내면 묘사에 치중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난 그 반대편에 있는 작가가 한 명 쯤 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드 보일드한 묘사를 위해 백방으로 취재를 다니곤 하지요. 이번에도 검찰 수사관, 119구조대 잠수교관, 토목시공기술사, 댐 운영관리팀 등을 찾아가 자문도 받고 전문지식도 얻어들었지요. 소설의 무대인 세령호와 등대마을은 실재하지 않지만 지난 2년 동안 이 음산한 두 마을의 이장 노릇을 무사히 끝마친 것 같아 홀가분합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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