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상실 그리고 보전 기사의 사진

시간과 순간 예술이라는 공연은 무대에 올리기 전에 몇 번이고 리허설을 한다. 관객은 없으나 본 공연과 다름없이 시연을 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잘못된 연기를 바로잡으며 심지어 대본을 고치기도 한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연출과 감독의 승인이 나면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연극은 어떤가? 리허설이 없다. 시나리오도 없다. 뿐만 아니라 녹화해 편집할 기회도 없이 무대에 오른다. 시나리오 대신 주인공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존해야 하며 리허설 대신 재능에 매달려야 하고 연출과 감독 없이 흥행조차 운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순간이라는 공연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위험은 고스란히 주인공의 몫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연 중 발생하는 모든 실수에 대해 주인공으로서 연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연 자체에 대한 모든 결과를 인간으로서 떠맡아야 하는 점이다.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불 보듯 하다. 그런데도 실패에 대한 결과는 너무나 혹독하고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멍에로 남는다. 아! 인간의 삶이란 연극이여, 모든 공연은 넉넉한 연습과 몇 번의 리허설이 있다는데….

반전의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 무대의 막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삶이라는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내용 없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며 그 무대의 막은 관객이나 주연이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막을 내린 이후에는 재연 기회가 다시는 없다는 것이다. 어찌 하겠는가? 멈추고 모든 것을 끝내겠는가? 아니면 지나간 잘못을 돌이킬 수야 없지만 앞으로 좀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반전의 꿈을 이뤄 관객들을 감동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여기 몇몇 바보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잘못으로 발목이 잡혀 후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되씹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천치들이 있다. 그들은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소중한 삶을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한 채 좀 더 잘할 수도 있는 시간과 미래를 소모해 버린다. 그들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다. 술에 의존하고 약에 찌들어 사는 것으로부터 어서 떠나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못하는 옹졸한 사람들로부터 떠나 지옥과 같은 곳에서 천국으로 옮겨오는 것이 좋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거래소의 등장

여기 신기한 거래소가 있다. 일반적으로 거래의 대상이 안 되는 것들만 골라서 거래하는 ‘교회’라는 거래소이다. 동산이나 부동산이나 은행에 잔고증명이 없어도 좋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것은 실패했거나 성공한 기억과, 끝없이 상상해 오던 상상에 가치를 인정하고,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기회만 주면 보이게 될 잠재력, 사랑 등 이와 유사한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담보로 보화를 대출해 준다. 그중에서도 가능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소유다.

보전돼야 할 이 보화는 잘못된 공연을 바로잡아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감동을 이끌어 낸다. 이 감춰진 보화의 반대편에 날름거리는 뱀의 혀를 보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글귀가 보인다. ‘포기’라는 글이다. 삶을 통해 가장 멀리 해야 하는 글의 의미다. “당신의 포기는 당신만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존 던의 글이 떠오른다. “다른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의 상실이니, 나는 인류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현승(과천소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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