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이명희] 그들이 사는 법 기사의 사진

“사회지도층의 윤리란 이런 거야. 일종의 선행이지, 선행. 나 가정교육 이렇게 받았어.” “그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회지도층 김주원의 편지를 받는 유일한 소외된 이웃이야.”

지난 몇 달 동안 ‘시가폐인’ ‘현빈 열풍’으로 전국을 달궜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주인공 김주원(현빈 분)은 툭하면 사회지도층을 들먹인다. 드라마 속의 사회지도층 김주원은 소외된 이웃 길라임(하지원 분)을 위해 목숨을 대신 내놓기도 한다.

현실 속 대한민국 사회지도층이 사는 법은 이렇다. ‘모피아’답게 살기.

정통 재무관료로 재정경제원 차관과 통상산업부 차관, 관세청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서울 강남에 집 한 채밖에 없어 돈 많이 주는 민간 금융회사 CEO 자리를 노렸다. 그러나 녹록지 않았다. 결국 국책금융기관인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 자리를 꿰찼다. ‘생계형 낙하산’이니 ‘장관까지 지낸 분이 격이 맞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뭐 어떠랴. 이런 게 그간 대한민국 모피아 선배들이 거쳐 간 길인데.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지론을 가진 금융위원장은 소외된 이웃(?)에게 뭔가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과급을 포함한 총 연봉 4억6000만원은 소외된 이웃에겐 너무 적다고 여겼다. 그래서 “연봉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본인 역시 농협경제연구소장 재직 시 유례없는 특별연봉을 받았기에 그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난리들인지….

사회지도층이 사는 이런 방법도 있다. 내 밥그릇은 절대 뺏기지 말고 남의 밥그릇은 뺏어오기.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6인 소위원회가 지난 10일 법조개혁안을 내놓자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전관예우 방지를 위해 변호사 개업 시 퇴직 전 근무기관 사건 맡는 것을 1년간 금지하고 판·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특별수사청’을 설치하는 것 등이 주 내용이다. 당장 자신들의 밥그릇은 줄어들고 권한은 땅에 떨어지게 생겼다. 소위는 개혁안을 관철시킬 계획이지만 율사 출신 의원들과 법조계 반발로 모처럼 마련한 개혁안이 쓰레기통에 처박히지 않을지 걱정이다.

변호사들은 제 밥그릇 지키는 데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국회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탈세를 겨냥한 ‘세무검증제(성실신고확인제도)’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월급쟁이와 달리 세원이 불투명한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의 탈세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하려던 제도다. 검증 대상이 연 수입 5억원에서 7억5000만원으로 상향조정됐고, 다른 업종까지 확대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율사 출신 의원들이 포진한 법사위 문턱은 넘지 못했다. 상임위를 통과한 지 5일이 지나지 않았다는 ‘법안숙려 규정’ 때문인데 하도급법 개정안 등이 법안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통과된 것과 비교하면 어불성설이다.

법사위원 16명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위원장을 포함, 7명이다. 이들이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제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 또 무슨 핑계를 대고 무산시킬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사회지도층도 있다. 여자 연예인을 노리개 삼아 온갖 추한 짓을 다하고도 보란 듯이 한 가정의 아빠로, 유력 업체의 CEO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여자 연예인은 자살하면서까지 부조리한 세상에 항변했지만 세상은 꿈쩍도 않는다.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소외된 이웃’보다 ‘사회지도층’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 게 대한민국이다. 행여나 사회지도층의 신분이 들통 날까 진실은 꼭꼭 덮고, 그녀의 편지는 정신병자에 의해 조작됐다며 수사는 서둘러 끝나버렸다.

드라마 속 사회지도층 김주원과 해병대 가는 현빈에 대한 열풍 뒤에는 부조리한 우리 사회지도층들에 대한 반감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이명희 경제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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