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규판] 日 경제회복 낙관하기 어렵다 기사의 사진

1995년 발생한 한신 대지진은 지진을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그해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2.4% 증가했다. 고베를 중심으로 한 피해지역의 생산·소비 감소보다 재해 복구과정에서 나타난 이른바 복구수요가 더 많은 결과였다. 지진으로 파손된 주택과 공장, 인프라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투입된 기업의 설비 및 주택 투자와 정부의 재정지출이 일본경제를 회복시킨 셈이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자국 경제가 이처럼 호황이었던 시절은 없었다고 할 정도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지진과 같은 대재해가 선진국에서 발생하면 해당국 경제에는 유리하지만, 해당국의 통화가치 상승과 세계 금리인상으로 세계는 오히려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 3·11 동일본 대지진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서도 다소 낙관적인 전망이 눈에 띈다. 물론 이번 대지진은 일본 동북지역과 일부 관동지역을 강타했고, 대지진과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에 따른 방사능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한신 대지진보다 피해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향후 6개월 후에는 생산설비와 인프라시설 복구가 본격화되고 복구수요가 발생해 금년 말이나 내년 초부터는 경기회복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는 논조이다.

민간수요 회복이 관건

그렇다면 경기회복만 되면 일본경제는 괜찮을 것일까. 여기에는 경제지표가 갖는 한계가 숨어 있다. GDP로 측정하는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대지진과 같은 재해로 발생하는 자본스톡의 손실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손실된 자본스톡을 복구하는 데 투입된 기업의 투자와 정부의 재정지출을 반영한다. 한신 대지진 당시 재해복구에 투입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99년까지 10조엔으로 집계되는데, 이 중 절반이 인프라 복구에 투입됐다. 그만큼이 고스란히 경제성장률 측정에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대지진 이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경제주체가 누구냐에 있다. 버블붕괴 이후 90년대 말까지 일본 정부가 각종 경제대책 명목으로 쏟아부은 공공투자는 90조엔을 넘는다. 그 결과는 경제성장률로 나타났다. 그러나 장기불황에서 벗어났다고 평가받지는 못한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20년이라 하지 않는가. 요컨대 가계 소비, 기업 투자와 같은 민간수요가 되살아나서 자율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져야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지진 이후 민간수요가 급속히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원전사고 여파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은데, 소비와 투자가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일본 정부가 복구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아직 피해규모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확보해야 할 복구 재원으로 향후 5∼6년간 총 25조엔, 특히 금년에만 최소한 10조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를 넘는다. 물론 대지진 이후 일본 국내 투자가들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더욱 강화돼 저금리 추세가 유지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국채 소화할 여력 있을지

그러나 일본 정부의 국채 발행을 국내 투자가들이 전부 소화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태가 달라진다. 일단 금리인상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일본 정부의 재정부담 가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일본의 재정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대지진은 인접국은 물론이고 자국 경제에도 결코 유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두고 싶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硏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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