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리랑이  ‘세계 1등’  맞아요? 기사의 사진

세계에서 가장 ‘황당한’ 1등 교과서 어떻게 실렸나

‘한국 고유의 전통 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선정단으로 참여한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아리랑을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도덕 교과서 114쪽에 실린 글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아리랑’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글이 수록된 5단원 타이틀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좀 더 읽어보자.

‘선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선정단은 아리랑을 듣는 도중 몇 번씩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리랑은 음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깊이 새겨 주었습니다.’

수업 준비를 하다가 “아리랑이 1위면 2위는요?” 학생들이 물어오지 않을까, 고민하셨을 선생님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2위는 없다.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을 선정하는, 그런 대회가 없었다.

세계 1위 아리랑, AP에 따르면?

이 교과서 116쪽에 주요 내용의 출처를 나열한 ‘참고자료 목록’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아리랑’의 참고자료는 이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 제 작은 소망? 대중을 위한 클래식 선교사’ 2009. 4. 21. OSEN.

인터넷 신문 OSEN이 2009년 4월 21일 보도한 바이올리니스트 유모씨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해 교과서 114쪽을 집필했다는 뜻이다. OSEN은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고, 유씨는 당시 민속음악 콘서트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2년 미국 AP통신은 ‘세계 속의 아리랑, 아리랑의 세계화’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에 저명한 음악인들이 모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선정 위원회를 만들고 노래 하나를 선정했는데, 그 곡이 바로 우리의 아리랑이라는 것이다.’

유씨의 코멘트도 있다.

“너무 반가운 기사였어요. 그 말은 곧, 우리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란 말이잖아요. 세계가 인정했다는 것이죠. 아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에요.”

아리랑이 1등 했다는 그 대회는 2002년 독일에서 열렸으며, AP통신이 보도해 알려졌다는 얘기다. 교과서의 출처가 된 이 기사의 필자는 OSEN을 퇴사한 뒤여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씨에게 당시 인터뷰에서 ‘아리랑 1등’ 얘기가 나온 경위를 물었다.

“OSEN 기자는 제가 해준 얘기를 듣고 쓴 걸 거예요. 저는 국악방송 PD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고요. 국악방송이 만든 연주회 책자에도 그 얘기가 큼직하게 실려 있었어요.”

유씨가 정보를 얻었다는 국악방송 이모 팀장은 22일 이렇게 말했다.

“그게 오보라는 설도 있어서…. 2005년쯤 우리 작가가 아리랑 1위 얘기를 알려줬어요. 인터넷에 흔하게 언급돼 있는 정보여서 당시 제작한 음반의 설명 책자에 삽입했는데, 오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그런 표현을 안 쓰고 있습니다.”

“유진박 앨범엔 ‘아리랑’ 없는데…”

네이버 검색창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아리랑’을 입력하면 블로그 카페 지식iN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많은 관련 글이 뜬다. 예외 없이 이런 문장으로 아리랑 1등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 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선정단에 단 한 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지지율 82%’를 제외하면 교과서에 실린 것과 거의 같은 문장이다. 모두 출처는 AP통신으로 돼 있다. 그리고 대부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아리랑은 선정위원들이 처음 듣는 곡이었으며, 한국의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연주했다.’

그 대회에 유진박의 연주가 사용됐다면 그는 이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1999년부터 유진박의 활동을 도운 매니저 이상배씨에게 물었다.

“그거 저희도 인터넷 보고 알았어요. 굉장히 오래된 얘기예요. 유진박 앨범에는 아리랑이 없어요. 이런저런 행사나 방송에서 김덕수사물놀이패 같은 다른 연주자들과 아리랑을 합주한 적은 있죠. 거의 애드리브(즉흥연주)로.”

음원 사이트 벅스 검색창에 ‘유진박, 아리랑’을 입력하면 ‘Come on Mony’ 등 그의 연주곡 3곡이 검색된다. 그 밑에 네티즌 댓글이 죽 달려 있는데, 이런 질문이 2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1위로 뽑힌 유진박의 ‘아리랑’은 왜 없는 거예요?”

아리랑, ‘도시 전설’이 되다

네티즌 사이에 ‘도시 전설’이란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시작해 오랜 시간 회자되면서 모두가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 근거를 찾을 순 없지만 반박하는 이도 별로 없는, 그런 이야기를 뜻한다. ‘세계 1위 아리랑’은 약 8년 만에 도시 전설이 됐다.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 기능을 활용해 ‘아리랑 세계 1위’ 글들을 날짜순으로 정렬하니 가장 오래된 건 2003년 4월 2일이다. ‘아리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 선정’이란 제목으로 한 카페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그 작성자가 처음 썼는지 다른 데서 퍼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2003년 4월부터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고, 2004년 확산세가 절정에 달했으며, 그 뒤로도 해마다 같은 내용이 수많은 블로그와 카페에 올라왔다.

진위 논쟁도 여러 번 벌어졌다. 2003년 10월 10일 한 네티즌이 네이버 지식iN에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된 게 사실이냐”고 묻자, ‘jcal62’란 ID의 네티즌은 이렇게 답했다.

“아마 ‘한류열풍사랑’이란 카페에 올라온 글 같던데, 카인즈(한국언론재단 기사검색 사이트)에도 (그런 기사가) 한 건도 없는 걸로 봐 유비통신(유언비어)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

2006년 6월 30일 지식iN에 다시 같은 질문이 등장하자 한 네티즌은 “그거 구라랍니다. 찾아봤는데 그런 기사 없습니다. 뻥도 정도껏 쳐야지”라고 했고, 이에 다른 네티즌은 “지지율이 82%가 아니라 78%였을 뿐, 1위는 맞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쟁은 쉽게 묻혔다. 아리랑 1등 스토리는 굽힘없이 확산됐고, 다양한 곳에 인용됐다.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2008년 12월 7일 ‘아디동 블루스(1950년대 미국에서 아리랑을 재즈로 편곡한 노래)’를 소개하면서 “아리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1일 KBS 뉴스 프로그램 앵커는 ‘크로스 미디어’ 코너에서 외국인들이 아카펠라로 아리랑 부르는 동영상을 소개하며 “아리랑, 외국인 작곡가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 1위로 선정된 바 있는데요”라고 했다.

2009년 2월 29일 매일신문 칼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작곡가들로 구성된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 대회에서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뽑힌 것은 우리를 얼마나 가슴 뿌듯하게 했던가.’

만화가 양병설(필명)씨가 2006년 펴낸 만화 ‘혐일류’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양씨는 그해 2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터뷰에서 “인터넷에서 보고 그렸다. 나 같은 일반인이 그 진위를 어찌 알겠나”라고 말했다.

AP 원문을 찾아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스토리를 믿게 된 데에는 ‘AP통신이 보도했다’는 주장이 한몫 한 듯하다. 세계 최대 뉴스 통신사의 보도는 일종의 권위다.

AP 웹 사이트로 가서 과거기사 검색창에 ‘Arirang’을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39건. 주로 북한 ‘아리랑 축전’, 아리랑을 연주한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평양 공연, 아리랑에 맞춰 남북이 함께 입장한 아테네 올림픽에 관한 글이었다.

39건 중 AP가 이 내용을 보도했다는 2002년 기사는 3건인데, 하나는 한국의 반미시위, 나머지 둘은 남북 친선 축구경기에 관한 것이다. 아리랑이 1등 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AP 기사는 국내 대다수 언론이 연합뉴스를 통해 원문을 제공받고 있다. 특히 한국 관련 보도는 언론사들의 외신 검색망을 빠져나가기 어렵다. 2002년 AP가 ‘아리랑 1등’ 보도를 했는데 국내 언론에 실리지 않았을 가능성, 거의 없다.

카인즈에는 종합일간지 지방지 경제지 영자지 인터넷신문 주간지 등 1990년 이후 국내 언론에 보도된 대부분의 기사가 수록돼 있다. 23일 ‘세계’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리랑’ 등 여러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해봤지만 AP의 ‘그 기사’를 찾지 못했다.

그동안 아리랑 1등 스토리의 진위를 확인하려고 뛰어든 기관이 두 곳 있었다. 문화관광부 산하 ‘아리랑세계화추진위원회’와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2008년 9월 아리랑의 국가브랜드화를 위해 출범한 아리랑세계화추진위원회에는 김영운 한양대 국악과 교수,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신용훈 건국대 국문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위원회 실무를 담당한 김대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팀장은 21일 이렇게 말했다.

“위원회 출범 후 아리랑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울 때였어요. (아리랑 1등 스토리를) 사업에 활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제 전공이 작곡이거든요, 작곡가들이 모여서 그런 걸 했을까 의심이 들더라고요.”

김 팀장은 AP 본사에 공문을 보냈다. 해당 기사의 원문을 찾아달라는 요청에 “찾을 수 없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며칠 동안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는 “아리랑의 우수성을 보여줄 팩트는 워낙 많아서 이건 위원회 자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어낸 이야기가 오랫동안 돌고 돌다 사실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세계 1위라는 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말이니까”라고 했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는 2006년 AP 유럽지부와 세 차례 직접 통화했다.

-사실 확인에 나선 계기는 뭐였나요?

“2006년 월드컵 직전이었을 거예요. 우리 사무실로 문의전화가 굉장히 많이 왔어요. 대부분 ‘인터넷에서 보니 아리랑이 1등이라는데, 경쟁곡이 뭐였냐’는 거였습니다. 해외교포들까지 전화를 해왔어요.”

-그래서요?

“국내 AP통신 기자에게 물었더니 유럽지부에 연락해보라면서 담당자를 알려주더군요. 그쪽이랑 세 번쯤 통화했을 겁니다. 결론은 찾기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길로도 알아봤는데 도저히 이 얘기가 시작된 원점을 찾을 수 없어서 우리도 (아리랑 홍보) 자료에 넣지 못했어요.”

-근거가 될 만한 게 전혀 없던가요?

“AP 보도라는 글에 날짜, 장소, 주최기관 같은 기사의 기본 요건이 없어요.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06년 한 국가기관이 공식 자료에 이 얘기를 넣었더군요. 제가 미확인 정보라고 알려줘서 급히 폐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도 같은 글이 꾸준히 인터넷에 올라오던데요. 김연아가 아리랑에 맞춰 연기한다니까 최근 다시 많아진 듯합니다.

“저는요, 강연 나가서 종종 ‘아리랑이 세계 1위에 뽑혔는데, 왜 관련 음반도 안 내냐’는 질문을 받아요. 질문하는 분들은 이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더군요.”

교과서에 실린 유언비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가 실제 있었다면 그걸 입증하는 건 쉽다. 관련 기사, 자료, 참가자 등을 찾아내면 된다.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면? 세상에 없던 일이 ‘세상에 없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처음 거짓말 한 사람을 찾아내면 가장 확실하겠지만, 그는 이미 인터넷 익명의 바다에 가라앉아버렸다. 남은 방법은 관련 정황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것뿐이다. 국민일보는 위와 같은 취재를 통해 이 얘기가 누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어떻게 교과서에 실리게 됐을까. 초등학교 교과서는 저작권자가 교육부인 국정교과서다. 교육부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08년 이 ‘도덕 4-1’을 집필했고, 2010년부터 전국에 보급했다.

연구·집필 책임자는 서울교대 유병열 교수. 아리랑 이야기가 담긴 5단원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집필진은 윤건영 청주교대 교수, 박찬석 공주교대 교수, 이복례 한국교원대 부설 월곡초등학교 교사, 조임호 충남교육청 장학사 등 4명이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집필 후 시험본을 만들어 1년간 시범 사용한 뒤 내용 수정을 거쳐 정식 발행된다. 이 교과서도 2009년 이 과정을 거쳤다. ‘세계 1위 아리랑’ 대목은 2009년 4월 21일자 기사를 참고자료로 인용한 점으로 미뤄 시범 사용 후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윤건영 교수는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집필은 개정된 교육과정에 맞고 학생들에게 적합한 소재를 현장 선생님들과 논의해 발제한 뒤 사실 확인을 거쳐 원고로 작성하는 방식이었다”며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서 그 대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과서의 총책임자인 유병열 교수는 “아리랑 스토리의 출처인 OSEN 기사의 취재원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유씨 홈페이지에도 같은 (OSEN) 기사 내용이 수록돼 있었다. 유씨는 서울의 모 대학 음대 교수다. 교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어서 별 의심 없이 인용했다. (그 교과서를) 6번이나 심의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우리 학생들이 너무 남의 나라 것만 좋아해서 한국에도 우수한 문화, 우수한 노래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선택한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과서는 연구→집필→심의의 3단계를 거쳐 제작됐다. 연구진 13명, 집필진 21명, 심의진 15명 등 모두 49명이 참여했다. 종합대 교수, 교육대 교수, 초등학교 교사, 교육부·교육청 장학사 등이다. 편찬자는 서울교대 도덕국정도서 편찬위원회, 발행인은 출판사 지학사다.

‘아리랑 세계 1등’ 언급된 사례

·2003년 4월 인터넷 카페에 등장

·2004년 블로그·카페에 급속 확산

·2006년 6월 네티즌 “거짓입니다”

·2006년 만화 ‘혐일류’서 거론

·2008년 12월 MBC ‘서프라이즈’ 소개

·2009년 2월 매일신문 칼럼

·2009년 4월 OSEN 보도

·2010년 초등 4학년 교과서 수록

·2010년 7월 KBS뉴스 앵커 멘트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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