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정수익] 짐 기사의 사진

한 개그맨이 TV에서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마라’는 강연을 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대학생들 앞에서 그는 지리산 등반 때 일화를 소개하면서 “지고 가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다”며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그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세상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인생의 짐을 지고 헉헉거리는 것 같아서다. 특히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방사능 공포로 이어진 일본의 대재앙 소식을 접하면서 부쩍 더해진 것 같다.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마다 힘든 짐을 감당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한때 시리고 아픈 가슴 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나 싶다. 기쁨과 즐거움의 햇살이 비치는가 하면 어느 한쪽 슬픔과 아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인생 자체가 짐이다. 가난도 짐이고, 부요도 짐이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이다.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이다. 헤어짐도 짐이고, 만남도 짐이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이다. 살면서 부닥치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게 없다.

인생 자체가 짐이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짊어지자.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지는 게 현명하다. 언젠가 짐을 풀 때가 되면 짐의 무게만큼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될지 아는가.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내 등의 짐’이라는 시는 감동적이다. 시인은 자신의 등에 있는 짐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살았고, 사랑과 용서와 겸손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짐이 자신에게 선물이고 스승이고 조련사였다고 했다. 이 정도면 짐을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짐은 무겁다. 가벼우면 짐이 아니다. 그래서 짐은 지는 것이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면 그건 짐이 아니다. 짐을 한번 져 보자.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허리가 굽어진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짐을 지고서는 기고만장 날뛸 수 없다. 그래서 짐을 지는 것(負)은 지는 것(敗)이고, 지는 것(沒)일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막중한 짐을 가장 완벽하게 지신 분이 있다. 예수 그분이다. 그분은 부당하기 짝이 없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다. 당시 십자가는 고통과 수치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가장 잔인한 처형도구였다. 그분은 그게 인류를 대속하기 위한 자신의 짐임을 알았기에 기꺼이 지셨다. 숱한 기적을 만들며 사람들의 존경과 선망을 받던 그분이 온갖 조롱과 모욕에 채찍질까지 받으며 수치와 고통을 감내하셨다.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는 지고(敗) 또 지는(沒) 길을 향하셨다.

짐은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를 우리의 짐으로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십자가를 앞세우거나 들어올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한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십자가를 앞세워 독선이나 횡포를 일삼지 않는가. 십자가를 들어올려 위세나 탐욕을 부리지는 않는가. 수많은 이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무슨 의미를 가지며, 동네마다 즐비하게 세워진 십자가가 무슨 소용이 있나.

사순절이 깊어간다. 예수 그분이 지신 짐, 십자가의 의미를 새겨보기에 좋은 때다. 엄청난 재앙에 일본인들이 막중한 짐을 지게 됐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는 분명 우리에게도 짐이다. 기꺼이 지자.

정수익 종교부장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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