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4) 삶에 겁주지 않는 바다 기사의 사진

‘관동십경’은 바다그림을 모은 시화첩이다. 만든 이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상성이다. 그는 관내 고을을 순시하면서 승경 열 곳을 골라 지방 화가에게 그리게 한 뒤 지인들의 시문을 부쳐 1748년 첩으로 꾸몄다. 당시 사대부의 넘을은 풍월이 흥건한 그림들이다.

그중 ‘청간정도’는 간성 앞바다를 그렸다. 해가 떠오르는 먼 바다와 해변의 풍정이 화면에 감싸 안긴 구도다. 반듯한 청간정에 어깨를 맞댄 한 채의 누각이 있고, 마을 집채들은 꽃나무에 파묻혔다. 봄날의 기운이 바야흐로 바닷가 작벼리에 서렸다. 바위에 솟은 세 그루 소나무는 돋보이게 과장되고 돌비알의 기세는 말발굽을 닮았다.

산 아랫도리를 휘감는 파도는 흰 머리를 풀어 헤친다. 먼 바다는 어떤가. 해는 막 떠오르다 파도에 둥둥 떠밀려간다. 갈매기는 바다 위를 날거나 쉬고 있고, 돛단배는 물이랑을 따라가다 정처를 잃었다. 물이 땅과 다투지 않으니 풍경은 인간과 상생한다. 다시 보니, 실경이긴 하되 보는 이의 흥취를 위해 장면을 재구성한 느낌이 든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복지(福地)가 아마 이런 모습이리라.

넘치는 화가의 소망이 아스라이 배래에 닿은 그림이다. 문인 조하망은 이 그림에 영탄시를 부쳤다. ‘바다와 골짜기의 절경 아름답고/ 천지의 원대한 기세 당당하구나/ 비굴하게 다투는 무리들이/ 여기서 마음 넓혔으면 하네.’ 드넓은 바다를 가슴에 늘 담아둔다면 지지고 볶는 세속의 일상이야 하찮은 게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청간정도’에 그려진 바다는 평화롭다. 인간의 삶에 겁주지 않는다. 이웃나라의 쓰나미처럼 도섭부리지 않는 동해가 고맙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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