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무리한 공약, 정권의 무덤 된다 기사의 사진

밀양은 경상남도 소속이다. 그런데 ‘동남권 신공항’ 유치에는 경남보다 대구가 더 열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망한다.” 엊그제 대구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임에서 한 중진의원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두 번 한 게 아닌데 어찌 믿느냐”거나 “신공항 백지화 발언을 한 청와대 참모를 반드시 색출해 엄벌해야 한다”는 성토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청와대 미친 ×들’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던 모양이다. 어제 열린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등 영남권 4개 시도의회의 회합에서도 ‘비열한 정치논리’ ‘피눈물’ ‘석고대죄’ ‘분노’ 등 살벌한 용어가 쏟아져 나왔다는 보도다.

여당 의원들의 대통령 성토

특히 대구가, 그리고 경북까지 가세해 밀양 공항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와 이해득실 계산 때문일 터이다. 밀양은 지역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대구와 더 연고가 깊다.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대구·경북지역의 경제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신공항이 가덕도로 결정될 경우엔 동남권 경제력의 부산 집중현상이 심화된다. 상대적으로 대구의 경제적 위상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유 있는 반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절박하기로는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 경제 역시 지속적으로 위축돼 왔다. 이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상실감 위기감은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게다가 산업구조 낙후, 산업 부지 부족과 이로 인한 생산력 저하 같은 문제를 풀어낼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다시 얻기 어려운 돌파구일 수 있다. 명실상부한 동남 경제권역의 허브로서 지위를 굳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지역 출신 정치인들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것은 ‘김해공항 확충’이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 입지 평가단의 평가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부산과 밀양 가운데 어느 한쪽이 선정되든, 아니면 신공항 건설계획 자체가 백지화되든 격렬한 저항과 심각한 후유증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나라당 의원들로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반면 야당들은 표정관리를 하면서 반사이익을 계산하고 있을 법하다. 이야말로 전형적인 한나라당의 내우(內憂)라 하겠다.

어느 지역을 역성들거나 사업 타당성 여부를 평가할 푼수는 애초에 못되는 문외한이다. 다만 선거공약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할 게 있을 듯하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공약은 해당 정권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당과 예비 주자들은 그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무서운 경고로 가슴에 새겨야 옳다.

정치논리를 누가 강요했나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건설과 이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공약은 무리하고 무모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수도이전 공약은 그 자신에 의해 ‘천도(遷都)’의 의미까지 부여됨으로써 국민적 갈등과 논란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는 국정 주도력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 대통령 역시 선심공약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엔 영남 표 확보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전통적 지지기반을 분열시킴으로써 야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격이 됐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가 부른 화(禍)인 셈이다.

다시 신공항 이야기다. 오늘 백지화 발표가 나오더라도 해당 지역 주민과 출신 정치인들은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선택을 못 받는 경우보다는 백번 낫다. ‘백지화’가 ‘비열한 정치 논리’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논리를 강요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과제일수록 정부의 결정 이전에 해당 지역 간의 진지한 논의가 소망스럽다. 표를 가지고 정부 여당을 압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못된다. 선거 과정을 타락시키면 대의정치는 국민적 회의에 직면하게 된다. 지역 간 상생의 묘리를 찾아내는 것이 곧 지혜다. 해당 지역 주민들, 자치단체들, 출신 의원들 모두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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