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속는다… 인터넷 떠도는 ‘진실 같은 거짓’ 어떻게 만들어지나 기사의 사진

2007년 3월 31일 MBC ‘쇼! 음악중심’에 신인 여가수가 등장했다. 곡명은 ‘비행소녀’. 첫 무대였지만 반응이 괜찮았나 보다. 방송 직후 그녀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신인 여가수의 무대치고 꽤 떠들썩했던 건 이름 덕분이다. 그녀는 데뷔 직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발견하신 이름이에요. 굉장히 강한 느낌을 준다는 데 착안하신 거죠. 천민 취급을 받았던 성(姓)이라서 그런지 한이 서린 것 같기도 하고,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 이런 의미도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마골피’다.

천방지축 ‘마골피’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 또는 天邦支竺馬骨皮) 7개 성은 조선시대 천민의 성이다. 이 성을 가지고 있다면 천민의 후예다.’

가수 마골피의 연예기획사 사장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고 ‘마골피’란 이름을 지었다는데, 이 얘기는 사실일까? 이들 성을 갖고 있으면 천민의 자손인가?

인터넷을 검색해도 ‘천방지축마골피=천민’을 증명할 마땅한 자료가 없다. 대신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천방지축마골피 또는 천방지추마골피는 이 성씨가 조선시대의 천민 신분에 해당하거나 천민들이 창성한 성씨라는 내용의 대한민국 도시전설이다.’

위키백과의 설명을 좀 더 읽어보자.

‘그 유래나 속설의 등장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제가 우리 민족을 이간질하려고 만들어냈다는 식의 주장이 있는 걸로 미뤄 근대화 무렵 생겨난 이야기로 추정된다. 신빙성 없는 내용으로 여러 차례 허구성이 지적됐다.’

그러면서 이것이 허구라는 네 가지 근거를 든다. ①고려와 조선의 천민은 성이 없었다. ②이 속설을 뒷받침할 사료가 없다. ③역모자에게 일종의 낙인으로 동물의 성이 부여된 일이 있었지만 후대에 모두 일반 성으로 바뀌었다. ④해당 성씨도 ‘마천목’처럼 고위 관직에 오른 사람이 많다.

성씨 전문가 2명에게 문의하니 모두 “천방지축마골피는 꾸며낸 얘기”라고 단언했다. 부천족보전문도서관 김원준 관장은 “천씨나 마씨 족보를 보면 천민의 족보가 아니다. 충분히 많은 벼슬을 했다”며 “천씨, 방씨는 중국에서 온 성”이라고 말했다.

‘우리 겨레 성씨 이야기’의 저자 김정현씨는 “고려 왕건이 백제와 싸울 때 목천 지역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자 그들에게 말, 노루, 코끼리, 돼지의 이름을 따 ‘마장상돈’ 네 가지 성을 내렸다고 ‘고려사’에 전해진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죄인의 성이라 오래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방지축마골피는 원래 있던 ‘천방지축’이란 말에 ‘마골피’를 갖다 붙여 만들어낸 얘기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속설을 가리키는 말, 도시전설은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이 사실로 믿게 된 이야기를 뜻한다. 민담이나 전설과 달리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생겨난 것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도시전설’이란 용어는 1969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거 모린이 처음 사용했다. 81년 민속학자 해럴드 브룬밴드가 저서 ‘사라진 히치하이커: 미국의 도시전설과 그 의미’에서 사용하며 대중화됐다. 도시전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한다.

①이야기 형태를 지닌다. ②진실처럼 통용된다. ③충분히 그럴듯하다. ④진실성은 증명되지 않는다. ⑤기원이 분명치 않다. ⑥교훈적인 이야기다. ⑦여러 버전이 있다. ⑧구전 또는 이메일, 팩스 등을 통해 개인 간에 전파된다. ⑨‘친구의 친구 이야기’라는 식의 믿을 만한 간접 출처를 지닌다.

당신이 낚인 도시전설

2005년 4월 29일 다산 정약용의 묘에서 쇠꼬챙이가 발견되자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한 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봉분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은 것으로 보이는 쇠막대 10개가 발견돼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일본이 우리 국토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소위 ‘단맥설’을 정부도 각종 자료에 사용해 왔다. 공보처는 김영삼 정부 국정 5년을 기념해 펴낸 자료집 ‘변화와 개혁’ 1권에 ‘전국 시·군·구에서 모두 118개의 쇠말뚝을 뽑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역시 증명하기 힘든 도시전설 중 하나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신앙사전편찬위원은 “전국 수백 개 마을에 가봤는데 서너 마을에 하나씩은 그런 전설이 있다. 이런 전설은 하나같이 ‘원래 우리 마을이 형세가 좋아 큰 인물이 날 곳인데 일제가 말뚝을 박아서 안 난다’는 식이다. 대다수는 1900년대 일제가 공사를 위해 박았던 쇠말뚝이 부풀려진 이야기”라고 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학 교수는 “평생 그 문제(일제 쇠말뚝)를 연구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일방적으로 하는 소리다. 그런 행위를 했다면 대한민국 어디에라도 그런 행위를 했다는 자료, 예를 들면 예산이 통과됐다든지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고 말했다.

도시전설의 확산에는 언론도 한몫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음주운전자와 배우자를 함께 유치장에 넣는 경우도 있고(태국), 음주운전자를 집에서 30㎞ 떨어진 곳에 내려놓은 뒤 걸어서 집까지 오게 하는 나라(터키), 심한 경우 총살형이나 교수형 등 사형에 처하는 경우(엘살바도르, 불가리아)까지 있다.”(내일신문 2008년 12월 1일자)

이런 내용은 1990년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나라에서 한때 그랬던 적도 있다’는 단서를 단 경우도 있지만 현재 시행 중인 제도라고 단정해 보도한 경우도 많다. 급기야 95년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서 배포한 홍보물에도 ‘엘살바도르는 음주운전자를 총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7년 주한 엘살바도르 대사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엘살바도르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 하나를 꼭 바로잡고 싶다. 일부 언론이 ‘엘살바도르에선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면 총살된다’고 잘못 보도하면서 한국사회에 퍼진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엘살바도르의 음주운전 처벌 규정은 한국에 비하면 매우 약하다.”

‘음료수 캔 뚜껑고리 1만개를 모아서 장애인 단체에 전달하면 그 사람 이름으로 장애인에게 휠체어가 기증된다’던 얘기도 대표적인 도시전설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는 2005년 3월 ‘파란나라사랑나눔회’라는 단체의 대표를 소개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전달하려고 캔 뚜껑고리를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두 달 후 국민일보에 ‘캔 뚜껑고리 1만개 수집 효심’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외할아버지에게 휠체어를 선물하려고 1년 가까이 캔 뚜껑고리를 찾아 쓰레기통 뒤지고 다녀서 ‘깡통소녀’란 별명까지 얻었다는 내용이다.

이 여학생은 결국 목표했던 1만개를 모았는데 휠체어로 바꾸기 전에 한 봉사단체로부터 휠체어를 기증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모은 뚜껑고리 1만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파란나라사랑나눔회’에 기증했다. 이걸 받은 사람은 휠체어를 얻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캔 뚜껑고리 1만개를 휠체어로 바꿔주는 계획은 90년대 초 한 재일교포 사업가가 국내 유명 탤런트를 내세워 선전했다. 당시엔 음료수 캔의 뚜껑과 고리가 분리돼 있어서 캔을 따면 고리가 떨어졌다. 이 고리가 재활용품에 섞여 재활용 기계에 들어가면 고장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구상한 캠페인인데, 후원 기업의 부도로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때 얘기가 돌고 돌아 도시전설이 됐고, 이를 믿은 효녀 여학생은 캔을 따도 뚜껑에 붙어 있게 구조가 바뀐 고리를 억지로 떼어내 1만개나 모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사실처럼 통용되지만 외국에선 도시전설로 취급받는 것도 있다. 혈액형 성격설과 선풍기 사망설이 대표적이다.

ABO식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돼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대한혈액학회에 따르면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혈액형은 수백 가지가 넘는 다양한 분류 방식이 있다. 게다가 혈액형은 유전자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 유전자가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지 않는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이 얘기 역시 근거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도시전설 검증 전문 사이트 스노프닷컴(Snopes.com)이 있다. 여기에는 “유달리 특정 지역에서만 회자되는 도시전설이 있다. 한국의 ‘Fan Death(선풍기 사망)’가 대표적 사례”라고 소개돼 있다.

선풍기 사망설의 주요 근거는 ‘얼굴에 집중적으로 강력한 바람을 쐬면 산소가 희박해진다’ ‘선풍기 바람이 저체온증을 유발한다’ 등이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도 호흡곤란을 겪지 않고, 저체온증으로 숨지려면 체온이 27∼28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선풍기는 그럴 능력이 없다. 스노프닷컴은 “1970년대 에너지를 아끼려고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도시전설이 되는 법

“비에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절대 비를 맞으면 안 된다. 혼란을 막으려고 정부가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대지진 이후 원전 상황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던 지난 14일, 일본에선 이런 ‘정보’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속히 유포됐다.

에다노 유키오 일본 관방장관은 뒤늦게 “인체에 위험한 수준의 방사능이 유출됐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낮았다. 불안감은 커졌고, 이런 주장은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후쿠시마 2호기 폭발. 바람 방향 한국 쪽으로 바뀜. 가급적 24시간 동안 실내에 머물러 있고 창문 닫을 것. 비가 온다면 절대 맞지 말 것. 목과 피부도 최대한 드러내지 말 것. 이르면 오후 4시 한국에 올 수 있음.”

지난 15일 한국에선 이런 문자메시지가 급속히 확산됐다. 바로 옆 나라 원전에서 사고가 났고 시민들은 불안한데, 정부는 “우린 걱정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공식 정보로는 정보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 유언비어가 생겨나 도시전설로 발전하는 최적의 조건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대지진을 앞에 두고 이 조건이 충족됐다.

유언비어가 도시전설이 되는 걸 막는 방법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뿐이다. 한국 기상청은 문자메시지가 확산되자 재빨리, 자세히 반박하며 “동풍이 아무리 분다 해도 울릉도와 독도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고 했다. 경찰은 이틀 만에 배모씨를 최초 유언비어 유포자로 검거했다. 배씨가 이런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냈는지, 금전적 이득을 얻은 건 없는지 확인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됐다. 30일 우리나라의 모든 방사능 측정소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 기상청은 “캄차카 반도 쪽으로 이동하는 기류의 짧은 순환이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도시전설의 확산은 정확한 정보와 그에 대한 신뢰로 막아야 하는데,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세우기가 쉽지 않다. 지진 이후 한국과 일본은 그런 점에서 닮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호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상황을 절묘하게 포착한 거짓말은 쉽게 ‘사실’로 둔갑한다.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는 전설, ‘옥스퍼드 대학이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선정했다’는 전설도 그렇게 생겨나 확산되다가 마침내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렸다(본보 3월 25·26일자). 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교수 교사 장학사 49명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도시전설은 이런 것이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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