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판석] 주는 나라 된 축복을 나누자 기사의 사진

“기왕 원조할 바에는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더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한국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6·25전쟁 직후인 1953년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67달러였다. 이러한 수준은 새롭게 독립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신생국보다 낮아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이룩한 고도성장으로 이제는 여러 나라에 원조를 주는 원조 공여국이 되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이제 개발도상국들의 부러움과 학습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빠른 발전의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혹자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부의 역할을 들기도 하고, 혹자는 높은 교육열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인의 역동성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폐허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도움으로 이만큼 발전했으니 이제는 우리가 받은 만큼 어려운 나라들을 위해 나누어 줄 때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여 원조 공여국이 되었고,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적개발원조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원조의 효과성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조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교육기관, 보건의료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도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데 왜 외국을 돕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청년실업과 상대적 빈곤 등 어려움이 있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지의 절대빈곤(극심빈곤) 상태와 비교할 수는 없다.

일례로 이들 지역의 국가에는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기아로 인해 사망하는 인구가 더 많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 대한 원조는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애를 발휘하여 세계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우리가 도움 받았던 일을 상기하며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공적개발원조의 효과성 제고는 이제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고, 올 가을에는 부산에서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대규모 국제회의도 열린다.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등지에 엄청난 규모의 원조를 지속해 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조의 효과성을 제고하자면 보다 창의적인 전략개발과 깊이 있는 지역연구조사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원조 활동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비정부기관(NGO)의 역량 강화와 인력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가난한 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위기에 처했을 때 한두 번의 효과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발성 지원은 자생력을 키워주지 못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치명적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건의료를 개선하는 등 그 사회의 형편을 보고 우선순위를 따져서 지원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과거에 그런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지 않은가. 초기의 학교와 병원 등이 외국의 지원 속에 이뤄진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 한다. 정부도 나서고 민간기관도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도울 바에야 보다 전문적이고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간 선진국들이 최빈국들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기왕에 도와주기로 나선 이상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며 이 일에 모든 주체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판석 연세대 언더우드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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