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이명박을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고 했던가. 그래서 아홉 번 잘 해주다가 한 번 섭섭하게 하면, 잘 해준 아홉 번은 햇살에 안개 걷히듯 사라져버리고 한 번의 섭섭함만 남는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인심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곳이 그쪽 아닐까 싶다. 정부의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있다고 하자. 손해를 보는 쪽은 정부에 대해 불만과 원망을 토해내지만, 이익을 보는 쪽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정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고립 자초하는 까닭

그런 세상인심에 따라 섭섭한 사람들만 늘려나가는 대표적 정치인이 이명박 대통령인 것 같다. 세종시 파동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논란으로, 정권 창출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으면서 비교적 현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충청권의 민심이 상당히 멀어졌다. 또 이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따라, 현 정권의 지지기반이랄 수 있는 영남 민심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호남은 애초부터 정권의 편으로 분류하기 힘든 지역이다. 그러면 세종시 계획에 반대했고, 동남권 신공항에 부정적이었던 수도권에서 자기들과 뜻을 같이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가니 전세대란이니 하며 정권에 대한 섭섭함만 남아 수도권 한나라당 의원들이 패닉 상태일 정도로 민심이 흉흉하다고 한다.

속된 말로 기름 빼고 따귀 빼고 나면 남을 지지 세력이 없게 될 상황에서 영남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하며 신공항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지경에 처해 있다. 특별한 국면전환이 없이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심화되고 내년 한나라당의 총선은 어쩌면 박 전 대표 주도로 치러질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었던 신공항 백지화가 이러한 정치적 타격을 불러오리라는 걸 계산 못했을 리 없다. 영남권 지지기반을 잠식하고 레임덕을 심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신공항계획을 백지화한 것은 굳이 본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고뇌에 고뇌를 거듭한 결단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 국가 최고 경영자로서 나름대로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였을 수도 있다.

인기보다 국익 선택한 결단

물론 10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국책사업을, 표만을 의식해 치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점, 오래 전에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공약을 3년씩 끌면서 지역민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고 PK와 TK 간 갈등을 조장한 점, 충분한 주민 설득 과정이 없었던 점 등은 그가 감수해야 할 비판이다.

그러나, 공약한 것이고 백지화할 경우 후폭풍이 몰아칠 테니 타당성과 관계없이 눈감고 사업을 추진키로 했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국가 최고 경영자가 해서는 결코 안 될 선택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자신의 정치적 타격을 각오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이 대통령의 용기만은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일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길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모든 위정자들에게 일깨워줬다.

물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박 전 대표의 말대로 그래야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약속, 특히 국익에 반하는 약속이라고 판단되면 대통령 개인에게 정치적 불이익이 돌아가더라도 거둬들여야만 한다. 공자도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했다.

영남권의 실망감과 배신감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멀리 볼 때 신공항의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 대통령이 객관적 분석에 근거하여 현시점에서 이를 백지화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결단을 내린 그 진정성만은 인정해주는 게 마땅하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