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5) 벽에 걸고 정을 주다 기사의 사진

베어버리자니 풀이고 두고 보자니 꽃이다. 어제 울타리 아래 풀도 오늘 술잔 앞에서 꽃이다. 난초는 어떤가. 풀인 것이 난초요, 꽃인 것이 난초인데, 난초는 풀도 꽃도 넘본다. 빈 계곡에 돋아나 남몰래 향기 그윽하고 선비의 책상머리에 놓여 오롯이 사랑받이다. 난초를 곁에 두면 천리 밖 초목이 무색하다.

하여도 이 난초, 심하다. 어쩌자고 이리 간드러지고 누구 마음 녹이려고 저리 교태인가. 샐그러진 잎이 바람결에 춤춘다. 여인의 소맷부리처럼 보드랍다. 꽃들은 맞받이에서 끌어안는다. 그리움 타서 옹그린 표정이 애잔한데, 꽃잎에 이슬 맺히면 글썽이는 눈망울을 볼 뻔했다. 그려놓은 난초라도 마음에 심은 난초다.

그린 이를 알면 그린 뜻이 짐작된다. 조선 화단의 기인 임희지가 그렸다. 그림 아래 알 듯 모를 듯한 글씨 ‘수월(水月)’이 보인다. 마당에 못을 파도 물이 고이지 않자 임희지는 쌀뜨물을 부었다. 그는 말했다. “달빛이 물의 낯짝을 골라서 비추겠는가.” ‘물에 비친 달’은 그의 호가 됐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첩을 얻자 누가 나무랐다. 그의 변명이 기막히다. “집에 꽃밭이 없어 방안에 꽃 하나 들여놨다.”

하고 다닌 행색은 더 가관이다. 달 밝은 밤, 팔 척 거구에 거위 털을 입고 쌍상투를 튼 채 맨발로 생황을 불고 다녔다는 그다. 풍류가 아니라 미치광이 놀음에 가깝다. 그의 짓거리로 보면 이 난초는 얻고픈 정인(情人)이다. 축첩이 모자라 벽에도 걸었다. 그 심정 알아챈 옛 시인이 읊는다. ‘주머니 비어도 길거리에서 팔 수 없으니/ 그윽한 향기 그려 종이 위에서 보노라’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