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장지영] 일본 ‘和’정신 어디에 기사의 사진

국내에서 2007년 개봉돼 인기를 끈 영화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일 식당 이야기다. 이 식당은 일식이라면 떠오르는 생선회나 초밥 같은 고급 요리가 아니라 연어구이나 돼지고기생강구이 등 가정식 요리를 판다. 특히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여주인공 사치코는 주 메뉴로 주먹밥을 내놓는다. ‘오니기리’로 불리는 주먹밥이야말로 일본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영혼의 음식)’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니기리는 주먹 크기로 밥을 꾹꾹 뭉친 뒤 김으로 싼 것이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양은 다양하지만 삼각형이 가장 많다. 맛을 내기 위해 밥 속에 다양한 재료를 넣는데, ‘우메보시’로 불리는 절인 매실, 닭고기나 쇠고기 볶음, 다시마조림 등이 대표적이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미 1000여년 전부터 오니기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편의점이 보편화되면서 오니기리는 더더욱 확산돼 일본인의 생활에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카모메 식당의 사치코를 비롯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값싸고 흔한 오니기리를 일본의 대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 연구가들은 하나의 음식을 밥으로 싸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오니기리가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와(和)’ 정신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지난달 11일 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강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가 일본을 강타한 뒤 한때 40만명을 웃돌던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먹었던 것도 오니기리다. 지진 직후엔 교통망이 끊기면서 음식을 구할 수 없어 인근 주민들이 오니기리를 손수 만들어 피난소에 가져왔다. 당시 오니기리는 맨밥에 소금으로 약간 간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난민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오니기리였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투박한 오니기리야말로 어떤 고급 요리보다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진과 쓰나미 이후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일본 돕기에 나섰다. 누가 울면 같이 울어 줄 만큼 정 많은 한국인은 이웃 일본의 고통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배용준 등 한류 스타들이 일본 연예인들보다 먼저 의연금을 기탁하는 등 한국 곳곳에서 일본 돕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한국인의 온정에 일본인들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런데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30일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학교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를 내놨다. 모처럼 훈훈해진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이틀 뒤인 지난 1일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다시 쐐기를 박았다. 외교청서란 일본 외무성이 한 해 동안 외교 정책의 기본 원칙을 담아 매년 발간하는 책이다.

사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는 자민당 정권 시절인 2008년 7월 책정된 신(新)학습지도 요령 및 해설서에 입각해 이뤄진 것이어서 이미 예정됐었다. 다만 민주당 정권이 자민당 정권에 비해 역사를 직시하고 주변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내심 교과서 검정 기준을 재고하거나 발표시점을 늦추는 등의 조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욱 노골화했다.

물론 센카쿠열도와 북방영토 문제로 중국과 러시아에 백기를 든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과의 마찰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는 노력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국 이익을 위해 피 터지는 경쟁이 우선시되는 국제정치학상 국가 간 ‘소울 프렌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웃 국가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와(和)’ 정신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인기 있는 오니기리를 먹으며 일본이 자랑하는 ‘와(和)’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장지영 국제부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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