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변환철] 사법개혁의 출발점 기사의 사진

“기득권층 옹호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고르게 살 수 있게 하는 정신이라야”

‘시골 의사’란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박경철씨가 얼마 전 트위터로 여론조사를 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박경철씨는 지금 ‘이 세 가지를 개혁하면 차기 지도자로 무조건 찍어주겠다’는 가정형 질문을 하면서 국민들이 생각하는 당장의 개혁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회신된 대답을 보면, 놀랍게도 개혁 제1순위는 사법개혁 그중에서도 검찰개혁이었고, 2위가 부동산 문제, 3위가 교육 문제였다고 한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이처럼 대단한데, 실제의 사법개혁 진행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 1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특별소위원회(6인 소위)가 마련한 사법제도개혁 합의사항에 대한 의견수렴 공청회를 개최했다. 법무부, 대법원(법원행정처), 대한변호사협회 등 이해기관의 관계자들은 물론 여·야가 각각 추천한 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이해기관들 간의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특히 검찰은 지난 2일 열린 ‘전국 검사장 워크숍’에서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설치, 경찰 수사개시권 부여 및 복종의무 폐지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검찰의 개혁안에 대해 ‘수용불가’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수용불가의 명분으로 ‘사법개혁은 국민의 입장과 국제기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랜저 검사 파동’ 등에서 보듯이 검찰은 그동안 ‘제 식구 감싸 안기’의 행태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했던 검찰이 과연 ‘국민의 입장에 서서’ 사법개혁이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이라는 포장을 빌렸으되 그 실상은 기관이기주의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발로 비쳐지는 것은 필자만의 짧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비판은 비단 검찰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여타 기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이들의 반발을 보면서 판사직을 버리고 만석의 재산까지 바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고헌 박상진(固軒 朴尙鎭, 1884∼1921) 선생의 고귀한 삶을 떠올려 본다. 고헌 선생은 대한광복회 초대 총사령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체포되어 3년 6개월의 옥살이 끝에 1921년 8월 11일 서른여덟의 나이로 사형집행을 받고 순국했다. 선생은 1910년 판사임용시험에 합격해 평양 법원에 발령까지 받은 분이었다. 판사가 되어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판사로 부임하지 않고 독립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또한 승지이자 대지주였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만석지기의 재산도 소유했으나 그 재산마저도 모두 독립자금으로 사용한 바람에 선생의 생가조차 타인의 소유로 넘어갔다. 선생은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돌아가실 때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청산과 녹수를 보기 부끄럽다’는 내용의 절명시를 남겼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 선생은 ‘원정(原政)’이라는 논문에서 “정치란 (모든 어그러진 것을) 바르게 해주는 일이자 국민 모두가 고르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다(政也者 正也 均吾民也)”라고 했다. 다산은 부연하여 “어찌하여 토지의 이익을 독차지하여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토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곤란해진다는 말인가. 토지와 농민을 계산하여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바르게 하는 것이 정치이니 백성을 고르게 살게 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법개혁도 이러한 정신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사법개혁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사법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출발점은 당연히 기득권층의 기득권 버리기가 될 것이다. 법(法)이라는 글자에 물을 뜻하는 삼수 변이 사용된 이유도 물이 어떠한 그릇에 담겨도 평평한 것처럼 법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법개혁의 진정한 의미는 법이라는 글자 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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