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한창] 리버즈 오브 바빌론 기사의 사진

대학시절, 야유회를 갈 때 필수품이 야외 전축이었다. 학우들은 경쾌한 디스코 사운드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당시 최고 인기를 모은 노래가 있었다. 독일 디스코밴드 보니 엠의 ‘리버즈 오브 바빌론(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다.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 선수가 등장할 때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롯데의 강∼민호’라는 응원가가 바로 그 곡이다.

1970년대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 노래를 기억한다. 영국에서만 음반 200만장이 판매될 정도였다. 가사는 슬프지만 멜로디는 경쾌했다. 우리는 노래 속에 담긴 심오하고 슬픈 사연은 전혀 몰랐다. 실연한 사람이 강가에 앉아 옛날을 회상하는 내용쯤으로 유추했다.

시온을 그리워하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은 극한 고통을 겪으며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장 14절)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고향에서 누리던 과거의 영화는 작은 물방울 같은 것.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침공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고, 유다 최후의 왕 여호야긴을 쇠사슬에 묶어 포로로 잡아간다. 이방민족의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아침에 마른 뼈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다. 다만 찬란하고 영화롭던 예루살렘,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 안에서 평화를 누리던 과거의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목 놓아 통곡한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바벨론 강가에 주저앉아 울었네/시온성을 회상하며 우리는 울었네.”

시온이 어디인가.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슴 뛰는 단어다. 영원한 본향(本鄕)이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예루살렘이요, 장차 들어갈 하늘의 도성이다.

증인을 소망하다

그들은 왜 포로가 되었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했다. 그리스도의 ‘증인’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상의 것을 탐하며 우상을 섬겼다. 이방 사람들로부터 조롱까지 당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로 넘겼다. 가슴 찢는 회개를 기대하면서…. 이스라엘은 포로가 된 후 비로소 여호와의 사랑을 깨닫는다.

오늘 한국교회를 들여다보자. 초기 기독교인은 ‘신용의 보증수표’였다. 그 덕분에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시온의 축복을 누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계속 명령했다. 증인의 사전적 뜻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증인에게 신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 위기다.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신뢰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축복이 크면 그만큼 의무도 크다. 하나님은 축복 다음에 반드시 의무를 주신다. 한국교회가 ‘1200만 기독교인’이라는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며 눈물짓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올드 팝송 ‘리버즈 오브 바빌론’이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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