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기여입학제 고민해보자 기사의 사진

1991년 10월, 기자는 남북 고위급회담 취재차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백화원초대소 숙소에 짐을 풀고 북측 안내원과 함께 경내를 산책했다. 김일성대학을 나왔다는 안내원은 기자가 쓴 기사를 비롯해서 기자에 관해 꽤 많은 인포메이션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얘기 중에 북한에서는 돈 없어서 공부를 못하거나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다며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것이었다.

좀 유치하다 싶어 대꾸를 안 했더니 그는 “백 선생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렵게 공부한 걸로 아는데 내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자의 반응을 채근했다.

“남한에도 장학제도도 있고 해서 가난한 사람도 공부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짧게 대꾸하는 것으로 그 얘기를 끝냈다.

반대가 더 많은 제도이지만

TV에서 ‘미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집회를 보면서 20년 전 북측 안내원과의 일이 떠올랐다. TV 인터뷰에서 자매가 함께 대학에 다니는데 한 사람 당 1000만 원씩 등록금으로만 연 2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한 여학생의 하소연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등록금에다가 교재비 옷값 용돈 등을 합치면 어지간한 수입의 학부모로선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시골 학생이라면 하숙비까지 보태야 하니 부모가 부자이거나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수재가 아니면 대학 교육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처럼 어렵게 공부할 대다수의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기자로 하여금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조건을 갖춘 소수의 학생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고 대학 입학을 허용하는 이 제도는 평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반대하고 유명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도 반대하고 있어 현재로선 채택되기 힘든 실정이다. 기자의 가족들도 돈 많은 집 자녀들은 공부 못해도 일류 대학에 가게 돼 불공평하다며 반대 의견이었다.

기여입학제는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실제로 여러 위험요소들을 안고 있다. 부유층 자녀들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갈 기회를 더 준다는 의미에서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시비가 있을 수 있고, 학생 선발에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있으며, 학벌에 따른 사회 경제적 지위와 빈부의 세습 우려가 없지 않다. 또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며, 대학 간 서열화가 심화되면서 소수의 상위권 대학만 혜택을 봐 대학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질 위험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이를 잘만 운영하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들의 기여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큰 고통 없이 공부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학의 수준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적지 않은 대학들이 ‘반값 등록금’이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진 모르겠으되 상당 부분 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는 기여입학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물론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엄격한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다른 학생의 입학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 기여입학생 수를 정원 외 극소수로 제한하고, 그 선발 기준과 졸업 기준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마련하여 공개함으로써 사회적 감시가 가능토록 하고, 기여금의 이용을 저소득층 학생 장학금으로만 한정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잘 활용하면 큰 도움 될 것

미국과 한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말하는 건 무리지만, 하버드 예일 등 세계적으로도 일류로 꼽히는 미국의 이른바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모두 이 기여입학제를 채택하고 있다. 알려지기로는 대개 입학생의 10 내지 15%를 이 제도로 뽑고, 기여입학 대상 학생에게는 우리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에서 10% 정도의 가산점 혜택을 준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운영의 학생 등록금 의존 비율은 15% 정도인데 반해 우리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의존 비율은 평균 70%이고 심한 경우 90%가 넘는 대학도 있다. 물론 재단 전입금, 동문을 비롯한 기업과 독지가들의 기부, 정부의 지원, 학교 당국의 무리한 기금 적립 지양 등으로 등록금 부담을 줄여야 하겠지만 이참에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으면 한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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