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바다를 그리워하는 교육 기사의 사진
“성적 지상주의적 교육은 국민 각자의 등에 100㎏의 짐을 지운 듯 힘겹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교육을 칭찬하는 데에는 스토리텔링적 체계가 있다.

“한국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 학생들의 수업시간은 한국에 비해 한 달 정도 적어 21세기 경제를 준비하기에는 미흡하다.”(2009년 3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열을 배워야 한다.”(2009년 11월) “한국에서 교사들은 국가건설자(nation builder)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교사를 같은 수준으로 존경할 때가 됐다.”(2011년 1월)

사실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의 학생 학부모 교사는 알아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회원국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학업성취도를 3년마다 조사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 따르면 지금까지 4회 조사한 결과 한국 학생들의 성취도는 세계 3위권 안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 첫 실시한 상하이 학생들이 전 부문 1위로 조사됐지만 특정 도시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볼 때 한국은 핀란드 싱가포르와 함께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칭찬에 꼭 곁들이고 싶은 쓴소리가 있다.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엄청난 과욕, 이 과욕 때문에 효율과 성적에 치중하는 기능주의적 교육은 더 이상의 효율을 산출해내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 교육의 성적 지상주의의 맹신은 ‘교육열’이라는 긍정적 요소를 넘어 국민 각자의 등에 100㎏의 짐을 부과한 듯한 형국이며, 이 엄청난 부하는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그 질곡이 잉태하는 바, 백방(百方)이 무효로 나타나고 있는 출산율 저하 현상의 배경에 자녀 양육을 두렵게 여기는 젊은 부모들의 중압감이 깔려 있으며,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쇄 자살사건도 그 대표적 표징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취학 전 유아의 99.8%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42.7% 젊은 부부들이 교육문제 때문에 추가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는 교육개발원의 유아 사교육 실태조사 결과(2011년 2월)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부를 하는 참된 이유는 지혜롭고 인격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닦고 이치를 궁구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선비들은 사랑방 뜰에 단정한 매화 한 그루를 심어 싸늘한 초봄의 화신(花晨)을 완상하되, 감성을 자극하는 발그레한 홍매(紅梅)가 아니라 파르르한 기운이 감도는 절제된 미감의 녹매(綠梅)를 보며 문자향(文字香)의 은은함을 깨우쳤다.

성적과 효율 위주로 치닫는 1등 지상주의는 교육을 즐거움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전투로 몰아간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위하여 간단없이 학생부를 조작해주고, 명문 외국어고에서는 학생들의 외국 대학 입학을 위해 교육적으로 금지된 시험문제지 유출 및 입수를 시도하다 국제 망신을 당한다. 이것이 극소수의 비뚤어진 행동이 아니라 상당수의 학교에서 시도되고 있는 일반화 된 현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중하다. 그런 부정을 배웠거나 곁눈질로 알게 된 아이는 훗날 그 부정적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게 돼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교수나 연구원이 된 박사들은 사정이 어려워지면 그들이 지닌 배타적 프로페셔널리즘을 발휘해 나랏돈을 빼돌릴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식 탐구에 대한 신선함과 설레는 호기심 속에서 홀로 오래도록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대신에 당장의 어떤 성과를 재촉하는 교육은 일종의 사술(邪術)이거나 거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줌의 물속에서 헤엄을 배운 물고기가 대양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우리의 교육은 당장 효과를 거두려는 도구적 유혹을 거두고 더 큰 바다를 그리워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시원(始原)의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미래로 나가게 될 것이다.

수석 논설위원 so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