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몬티첼로에서 기사의 사진
꼭 8년 만에 찾은 몬티첼로(이탈리아말로 작은 언덕).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재임 1801∼1809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대부분의 생활을 했던 대농장이다. 지금은 제퍼슨기념관으로 수많은 관람객이 붐빈다.

지난 주말 워싱턴DC에서 2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이곳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드넓은 농장과 살던 집은 변함 없는데, 입구 매표소 근처는 자연친화적인 커다란 목조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십시일반(十匙一飯) 기부금이 많은 데다 방문객이 너무 많아 2009년에 새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날도 10시30분에 표를 끊었지만 집안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1시30분이었다.

집안 내부를 안내하며 제퍼슨의 당시 생활을 설명하는 관계자에게 기부금이 늘어난 이유를 묻자 “9·11 이후 미국은 위기 상황이고, 국제적 리더십은 도전받고 있다. 미국민들 사이에는 단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토머스 제퍼슨이냐’고 다시 물으니 “그가 지금의 미국을 일으킨 사람으로 가장 존경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퍼슨은 미국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인물, 영토를 두 배로 늘려 지금의 최강국 미국을 있게 한 사람, 명문 버지니아 주립대 설립자로 각인돼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서 구절은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가 됐고, 서구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 됐다.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광대한 미국 영토의 기반을 조성했다. 국익 측면에서 영국과 전쟁을 피하는 등 외교력을 발휘해 미국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당시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바빠서 별로 할 일 없고 실권도 없는 제퍼슨에게 독립선언서를 맡겼다거나, 제퍼슨이 루이지애나를 매입했다기보다 프랑스가 관리하기 힘들어 단돈 1500만 달러에 넘겼다거나, 제퍼슨 자체가 우유부단했다고 보는 시각들도 있다. 설사 그런 점이 있다 하더라도 제퍼슨의 외교력과 리더십은 미국인들에게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

이곳에서 30여분 떨어진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재임 1809∼1817년)의 기념관. 블루리지마운틴 산맥을 바라보는 그의 대저택도 제퍼슨기념관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관람객 수는 제퍼슨기념관에 비해 초라하기만 하다.

그는 미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으로서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후세로부터 그다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 1812년 매디슨은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벌였으나 잇따라 패배했다. 미국 경제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당시 백악관과 의회가 불타기도 했다. 그는 외교에 실패했고, 너무 자기 고집대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대통령에 열광한다. 그가 잘했든 잘못했든, 그 평가와는 별도로 대통령을 영웅시하는 정서가 있다. 미국 패권의 상징인 항공모함이나 연방정부 건물, 주요 도로에 자랑스럽게 대통령 이름을 붙이는 데는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런데 그 영웅들 중에도 급수가 있다.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제퍼슨은 부동의 ‘최우수 4인방’이다. 후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것이다. 같은 영웅들이지만 대통령 리더십과 업적에 대한 미국인들의 역사적 평가에는 엄연히 차별이 있다.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 남북관계…. 한국 정치권에서 터져 나오는 어지럽고 상반된 주장들은 도대체 우리에게 국가적 리더십이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책임 있는 당사자들 모두가 다음 대선이나 총선만 생각하고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평화로운 곳, 하지만 후세 평가의 엄중함을 느끼게 했던 곳, 몬티첼로의 단상(斷想)이다.

김명호 워싱턴=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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