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겨자씨 한 알의 기적 기사의 사진
어느 갤러리에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중 ‘양산을 쓴 여인’이 전시됐다. 그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노신사의 뒷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 작품 속 여인은 마치 모네가 거친 붓으로 대충 그린 것처럼 눈 코 입 등의 디테일한 정보를 생략한 채 얼굴의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신사는 확실하지 않은 그 그림을 재구성한다. 그의 기억 속에 아름다웠던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지난 시절 그녀와 함께 보냈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노신사는 모네의 화폭으로부터 그녀를 끌어내어 가슴에 지니고 갤러리를 떠난다. 늘 마음에 지니고 다니겠다는 또 다른 의지와 함께 그동안 잊고 지낸 것이 몹시도 미안한 듯 그 표정이 연연하다.

느낌의 시작

이처럼 기억하고 추측하며 상상하고 그것을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기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 중에서 짧은 순간에 ‘느낌’이 동기가 돼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고,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나 그중에 가슴에 남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주체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은 씨앗들이 아닐까?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한 고등학교 농구코치가 선수들에게 묻는다. “마이클 조던이 중도에서 포기한 적이 있는가?” “아니요.” “라이트 형제나 무하마드 알리는 포기했는가?” “아닙니다.” 코치는 다시 묻는다. “매컬리스트는 누군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물론 알 리가 없지. 그는 중도에서 포기한 사람이니까.” 농구코치로부터 중도에 포기한 매컬리스트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느낌’을 받은 선수 중에 작은 씨앗을 얻어 자기 밭에 심는 자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순간에서도 한 번쯤은 이를 악물고 극복해 내는 자신을 상상하며 결국 뛰어난 선수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마을 대부분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미야기현 자원봉사센터엔 ‘추억의 물건 찾기’ 보관실이 있다. 가족과 집을 빼앗긴 이재민에게 추억만은 돌려주자는 취지에서다. 폐허 복구 작업의 1순위가 ‘추억의 물건 찾기’였다는 점은 참으로 적절한 조치였다고 하겠다. 가족을 느낄 수 있는 진흙 묻은 곰 인형만이라도 이재민에게는 추억의 끈을 쥐게 하는 동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이재민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겨자씨 한 알의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있겠는가.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위로하며 기도해야겠다.

좋은 방법

모두가 함께 느끼고 기억하면 객관적이라 역사가 될 수 있다. 같은 생각으로 함께 바라면 저항 받지 않는 미래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홀로 기억하는 것과 그 자신만이 바라는 것은 주관적이라 본인에게만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느낌은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갖다 심을 수 있는 기회는 평등하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고 자라 큰 나무가 되게 하는 것은 차별화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상상력의 한계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깊은 바닷속을 누비기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그러나 낯선 사건들에 노출돼 있는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천국으로 안내하는 겨자씨 한 알을 심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장현승(과천소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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