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7) 빗방울 소리 듣는 그림 기사의 사진

화면에 주룩주룩 장대비가 내린다. 산 아래 바위는 둥둥 떠내려가고 다리 아래 빗물은 콸콸 흘러간다. 나뭇잎 사이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치며 떨어지고 강물 위로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올라 산자락을 덮는다. 산과 나무와 사람이 다 젖었다. 그림마저 물비린내 난다.

다리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저 이는 어부다.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낚싯대 걸친 그는 맨발에 ‘하의 실종’이다. 조선 그림에 나오는 어부의 입성은 거의 같은 모양이다. 가난해서가 아니다. 세상 버리고 홀로 산중 강가로 숨어든 은자를 어부에 비유하다 보니 갈삿갓에 띠옷과 탈메기 차림이 딱 어울리는 제격이었다. 고기잡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아, 드리우니 낚시고 낚느니 겨를이었다.

그림 속 글귀에도 나온다. 은자를 못 만나고 발길 돌린 당나라 이상은의 시 마지막 구절이다. ‘해 저물어 돌아오니 비에 흠뻑 옷이 젖었네.’ 물결이 드세면 낚시질을 거두고 비 내리면 돌아갈 뿐, 숨은 자도 찾아간 자도 허탕을 지지리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 어부도 빈손이 홀가분하다. 어깨에 멘 주대에도, 손에 든 다래끼에도 잡은 물고기가 안 보인다. 소득 없는 낚시놀음이 마냥 여유로운 옛 시는 하고 많다. ‘밤 고요하고 물이 차서 고기 아니 무노매/ 빈 배에 가득 밝은 달빛 싣고 돌아오누나.’

조선 후기에 대사간을 지낸 윤제홍이 그렸다. 문인답게 속은 깊고 겉은 야일(野逸)한 그림이다. 붓 대신 손가락에 먹을 찍어 그린 지두화가 유독 많은 그다. 이 그림도 산과 나무 묘사에 손끝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 손에서 촉촉한 먹색이 우러남은 그린 이의 마음이 젖었던 까닭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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