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장애 등급 매기기 기사의 사진

국내 장애인 정책은 등급제가 기본이다. 작동 구조는 이렇다. ‘장애인은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대상은 선별돼야 한다→국가가 장애 여부와 정도를 판정한다→등급에 따라 서비스를 차등 제공한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126쪽짜리 ‘장애인등급 판정기준’은 등급제의 실행 매뉴얼에 해당한다. 여기선 모든 게 점수로 계산된다. 장애 1급은 85점 이상, 2급은 75∼84점이다. 장애가 두 가지 이상일 때 몇 급이 되는지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돼 있다. 지난해에는 재심사 제도가 보태졌다. 심사기관에서 1차 판정이 적절했는지 점검받는 것이다. 부정을 막기 위한 이중 안전망인 셈이다.

뇌병변 장애라는 게 있다. 교통사고, 뇌졸중 등으로 인한 뇌손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복지부 기준에 따르면 뇌병변 1급은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 때 인정받을 수 있다. 독립적인 동작 수행이 어려워서 ‘대부분’(2급), 혹은 ‘부분적으로’(3급)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장애로 분류된다. 먹고 싸고 씻는 건 생존의 기본활동이다. 그게 힘들면 최소 3급 이상이란 얘기다.

마침 국가는 활동보조인이라는 이름으로 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전은 이 대목이다. 뇌병변 2급 이하는 도우미 신청 자격이 없다. 대상자는 엄격히 ‘1급’ 장애인이다. 결국 이런 얘기다. 뇌병변 2, 3급이 되려면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인정받아야 하지만, 실제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이 필요한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다.

2009년 장애등급 판정을 위해 정부가 쓴 돈은 35억8000만원. 재심사 제도가 도입된 지난해에는 73억5000만원으로 2배가 되더니 올해 다시 80억원이 늘어 153억원이 됐다. 2년 만에 4배 넘게 증액된 셈이다. 등급은 복지혜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한 심사는 중요하다. 그게 정부가 돈 들이고 제도 고쳐가며 그물망 수비를 펼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분류를 향한 열정이 빚은 결과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와주지는 않는’ 이상한 불일치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르는 건 복지의 영원한 딜레마 아닌가. 출발이 잘못된 이 말은 절반도 진실이 아니다. 장애 1급이라고 말할 때 ‘1’은 의사가 실험실 상황에서 내린 의학적 진단이다. 두 다리를 무릎 관절부터 잃었는지, 한 다리를 발목 관절부터 잃었는지, 한 손 다섯 손가락의 관절 총 운동범위가 75% 감소했는지. 판단 기준은 이런 것이다.

충분히 유용한 정보지만 그것만으로는 개인이 현실에서 맞닥뜨릴 어려움을 짐작할 길은 없다. 손가락 관절을 75% 잃은 자동차 정비공과 3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에게 닥칠 고통이 같은 등급일 수는 없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의 질과 양은 장애 등급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이, 성별, 직업, 가족관계, 거주지역, 심지어 인생 계획에 따라 삶이 요구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취업교육과 육아지원, 혹은 학습지원과 활동보조 중에서 필요한 한 가지는 ‘그’가 누구인가에 달려있다. 비장애인에겐 당연한 복지의 원칙이 장애인에게만 무시돼 왔을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등급은 무용한 것이다. 장애의 경중(輕重)은 구분돼야 한다. 다만 분류의 최대 효용은 보조자료 역할이어야 한다. 장애의 절대 등급이 존재하고 복지 서비스가 종속변수가 되는 대신, 서비스를 설계할 때 장애 경중은 참고자료로 활용돼야 한다.

등급제 폐지는 어떤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흔히 장애는 의학적 증상, 일종의 질병으로 여겨진다. 절대적 잣대와 객관적 진단이 존재하고 치료와 극복의 대상이 되는. 그러나 장애는 통념보다 유동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다. 개인이 가진 신체적 정신적 결함은 ‘표준적 삶을 방해할 때만’ 장애가 된다. 시스템을 다르게 짠다면, 어떤 결함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널리 쓰이는 경구를 빌린다. 턱과 계단이 없다면 휠체어는 장애가 아니다. 어떤 결함을 장애로 만들 것인가. 결정은 의학 대신 아마 우리 사회가 내려야 할 것이다

이영미 특집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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