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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용백] 상상력과 유연성

[데스크시각-김용백] 상상력과 유연성 기사의 사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벌써 40일을 넘겼다. 지금도 여진과 원전 사고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공간적 거리는 더 이상 특정 지역 사안을 외면할 수 있는 판단 요소가 될 수 없음을 새삼 일깨운다. ‘방사성 물질’ ‘불신’ ‘불안’ ‘공포’ 등 즐겁게 상상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높였다.

강진과 쓰나미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당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상황은 세계 재해 사상 처음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통상의 재해 매뉴얼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투명하지도 신속하지도 않은 조치들, ‘주먹구구식’ 원전사고 대처에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부글부글 끓게 만든다.

일본 정부와 원전 당국의 이런 모습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판단의 단초는 있다. 산업 로봇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본이 원전 유사시에 활용할 로봇 한 대가 없어 쩔쩔매는 모습이 그것이다.

지진 규모 7.9에 맞춰진 일본의 대응과 대비는 규모 9.0의 강진 앞에선 쓸모없게 됐다. 결과는 국민의 희생과 피해로 감당하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피폭, 1995년 규모 7.2의 고베 대지진을 뼈저리게 겪은 일본이다. 어찌 안전에 대한 고민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 일본의 기존 재해에 대한 상상과 대응 능력이 얼마나 허망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발생 한 달 만에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준인 최악의 상황이 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정한 국제 원전 사고 등급(INES)이 레벨 1∼7까지 있는데 레벨 7이라는 거다. 등장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들도 요오드(I), 세슘(Cs), 플루토늄(Pu), 스트론튬(Sr) 등으로 다양하다. 제대로 피폭될 경우 무시무시하다. 일본 국민들의 경이로운 질서의식도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사고 발생 때부터 레벨 5라고 극구 우기다가 한 달 만에 최악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위험 등급을 올렸다고 해서 원전 상황이 나빠진 게 아니고, 상황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좀 더 유연하고 신속히 대응하려고 노력했다고 토로한다. 누가 이를 수긍하겠는가.

각국 원자력 당국은 날아온 일본발 방사성 물질들이 극미량이어서 당장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앵무새처럼 떠든다. 안 보이니 믿는 수밖에 없지만 불안과 공포를 쉽게 떨치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이웃 국가와의 신뢰나 우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방사성 물질이 녹아 있는 고농도 오염수를 사전에 한국이나 중국과 협의하거나 고지하지 않고 바다에 흘려보냈다. 더 큰 위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외교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탄받고도 남는다. 일본은 이번 재해 상황을 주변국과 얽힌 영토 문제나 역사 문제, 경제 문제를 매끄럽게 풀어가는 계기로 삼기는커녕 구태의연한 완고함만을 내비칠 뿐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원전 사고 상황을 신속하고도 정확히 알려줄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국가 간 신뢰를 허물지 말라는 주문이다. 중국제품품질협회가 최근 발간한 ‘품질 신용 백서’는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중국이 위조품의 제조·판매나 납품 제품의 불량 등으로 국제적 신뢰를 잃어 입은 경제적 손실액이 연간 5855억 위안(약 97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잃은 뒤에 태연한 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일본을 지켜보는 한국도 원전 문제와 지진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상상력이 부족한 위정자들이 문제 해결에 완고할 때 자국민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단지 ‘우리’가 아닌 ‘인류’의 안전한 삶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상상과 대응이 절실해졌다. 에릭 아서 블레어(필명 조지 오웰)가 만들어낸 ‘오웰적(Orwellian)’ 상상력 말이다.

김용백 국제부장 yb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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