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대법원장의 겉과 속 기사의 사진

“대법관 증원 반대한 대법원장… 가치 희석 싫어하는 이기주의 아닌가”

사무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의 서리풀공원을 산책하노라면 종종 대법관들을 만난다. 젊은 시절을 함께한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법조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차지한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사실 대법관만큼 반듯한 사람도 드물다. 평생을 수도승같이 살아온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청문회에 대법관 출신들을 내놓으면 거의 다 통과될 게 틀림없다. 판사라는 직업에 긍지를 느끼고 권위를 지키려는 그들의 의식은 눈물겨울 정도다.

사석에서 한 원로 법관으로부터 재미있는 솔직한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해외여행 중 무리 지은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초원에서였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소 한 마리가 벌떡 일어서더니 흥분해서 한국 법관을 향해 뛰어오더라는 것이다.

당황한 이 판사님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했다. 미처 누구도 손쓸 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아, 내일이면 판사가 소에 받쳐 죽다라는 기사가 나겠지’ 하는 공포가 엄습하더라는 것이다. 다행히 소는 도중에 추격을 그만두고 싱겁게 돌아갔다고 했다. 판사의 명예를 지키려는 그의 잠재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게 원로 법관 한 사람만의 의식이 아니다.

동기회 모임에 대법관 한 분이 끼어 함께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혹시라도 초임 판사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이 발견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걸 봤다. 또 다른 대법관의 경험담이다. 안경을 벗고 변장을 한 채 변두리 당구장에서 공을 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알아보는 통에 기겁을 했다는 것이다. 조직과 권위를 지키려는 법관들의 정신은 견고한 성보다 더 강력하다.

그러나 대법원의 재판 업무에 대해 나는 실망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다. 70%에 이르는 사건이 아예 심리도 받지 못한 채 문전박대 당하는 현실이다. 상당수의 대법원 판결문은 ‘기록을 읽어보니까 잘못이 없더라’는 식의 성의 없는 몇 줄이 전부인 경우도 흔했다. 그런 무성의한 문장의 행간을 통해 대법관이 아예 사건 기록을 안 읽은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변호사들은 대법원 사건을 맡으면 어떤 줄을 대서라도 청탁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청탁의 내용이 기가 막힌다. 상고이유서 하나만이라도 읽어 달라는 거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부탁하는 셈이다. 그걸 위해 다시 대법관 출신에게 연줄을 대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대법관 수가 부족해서다. 그래서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대법관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도된 대법원장의 말은 반대 의견이었다. 장관급인 대법관 자리를 늘려 비싼 전관변호사만 쓰면 국민들의 비용을 증가시키니 오히려 심사제를 도입해 대법원에 함부로 상고하지 못하게 하는 게 좋다는 요지 같았다.

국민을 위한다는 토를 달았지만 그 기사를 보면 대법원장의 의견에는 가치가 희석되는 걸 싫어하는 이기주의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국회 공청회에서 박일환 대법관은 “우리는 법률심이니까 국민들이 상고를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과 법은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또 다른 비유를 하자면 진실은 달이고 법률은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우리는 법률심인데 왜 그러냐는 말은 손가락에 낀 때만 보면 되는 우리에게 왜 귀찮게 달까지 보라는 것이냐는 우문이다. 법관이면 어떤 어리석은 질문에도 현명한 대답을 해 주길 바라는 게 국민들의 심정이다.

그래도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대법원이다. 일선의 젊은 단독판사들은 미덥지 못할 때가 많다. 항소심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심 판결이 옳다고 단 한 줄로 판결을 선고하기도 한다.

이런 때 마지막 희망이 대법원이다. 그곳은 선택된 경륜 있는 최고의 법관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하급법원 판사들이 가지지 못한 시각과 경험으로 과감하게 잘못된 원판결을 파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그런 대법원을 요구하고 있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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