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벌벌 떨다 기사의 사진

“봄이 죽어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꽃이 만발한데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아름다운 우리 마을이 갑자기 정물화처럼 느껴져요. 지리산 생활 17년 만에 ‘소리 없는 봄’은 처음이네요.”

지난 주말 경남 하동군 청암면 하동호 주변은 봄이 절정이었다. 호반 위쪽 청암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마을은 벚꽃 매화 동백꽃 산수유 개나리 제비꽃 등 온갖 꽃으로 진경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 교회 손용우 목사는 소리 없는 봄을 적잖이 걱정하고 있었다.

“꽃이 지천인데 벌이 없어요. 예년 같으면 꽃마다 벌이 내려앉았지요. 토봉과 나물 채취로 먹고사는 마을 사람에겐 암담한 현실이죠.”

‘침묵의 봄’ 얘기는 전남 나주 광암교회의 토봉업을 하는 교인에게서도, 경남 산청의 산청기도원 원장에게도 들었다. 지난해 10월 토종벌 폐사율이 전남북, 경북이 99%이고 전국적으로 95.13%란 얘기를 본보 ‘이웃’을 통해 전한 바 있다. 그리고 봄, 혹시나 했으나 꿀벌은 돌아오지 않았다.

벌이 사라진 ‘침묵의 봄’

크리스천에게 꿀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구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으로써 꿀벌의 소산물을 들었다. 또 꿀은 유향, 향품 등과 더불어 예물로서도 언급된다. 벌과 꿀에 대한 예화는 성서 곳곳에서 말씀을 이해시키는 키워드로 활용된다. 신성한 물질이었던 꿀을 먹으면 유익한 힘을 얻는다고 믿었으며 현명하고 강인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와 달콤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촌은 사라지는 꿀벌 때문에 전전긍긍이다. 생태계의 대재앙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 바이러스로 인한 군집 붕괴현상은 2006년 미국 북부에서 본격화돼 유럽 전역과 동남아, 동북아 등으로 확산되었다. 멀리 남미라고 예외가 아니다.

곤충학자들은 바이러스와 병원균, 벌 기생충, 벌 기생충을 죽이는 살충제, 전자파 등 군집 붕괴의 이유가 될 만한 요소를 연구했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오죽하면 ‘벌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라고 부를까. 산청기도원에서 15년간 토종벌을 쳤던 전방자씨는 “소독도 해보고, 벌통을 태우고, 심지어 벌을 강하게 해준다는 인삼과 홍삼엑기스를 먹여 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양봉과 같은 벌 농사에 대한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꿀벌이 사육되기 시작하면서 기생충을 물리치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인공으로 여왕벌을 키우는 현대적 양봉법 등이 자연의 질서를 거슬렀고 여기에 살충제, 유전자조작 작물 등이 서식 환경에 타격을 주었다. 특히 인공 여왕벌과 전자파 등은 ‘신성한 기하학’으로 불리는 육각형 벌집 구조에 교란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는 얘기도 설득력 있다.

UNEP 경고 깊이 새겨야

이대로라면 꿀을 먹는 건 둘째 치고 전 세계 100종의 농작물 중 70여 종이 화분매개를 못할 위기다. 화분은 80%가 벌이 맡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달 10일 벌의 개체 수 감소로 인한 식량난을 경고했다. 곤충연구자 조안 엘리자베스 룩은 “벌과 같이 작은 것들 속에 신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다”며 기독교에서 벌은 부활과 영생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겨울이 올 무렵 벌집으로 들어가 3개월 동안 나오지 않는 습성은 그리스도의 시신이 3일 동안 무덤에 숨겨졌던 사건과 비유된다. 벌을 뜻하는 히브리어 ‘드부레’의 어근은 ‘말’의 의미를 지녔다. ‘주의 말씀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24:13)가 괜한 말씀이 아니다. 벌 때문에 벌벌 떨게 될까 두렵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